인증은 더 이상 ‘자랑‘이 아니다. ‘강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전시의 방식이다. 내 삶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여 전시하는 것이 이 시대의 인증이다.
내 일상을 돌이켜보며 렌즈를 들이대고 싶은 구간은 어디인지 고민해보자

나는 소유, 체험, 행위 중 무엇을 인증하는 사람이 되고싶은가? 나는 어떤 것을 인증하며 살아가고 싶은가? 요리하는자아, 옷 잘 입는 자아, 예쁜 가방을 지닌 자아여도 좋고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원서를 읽는 자아, 매일 30분씩 조깅하는 자아, 매일 모닝 페이지를 쓰는 자아여도 좋다. 내가 인증하는 것이 나를 보여주고, 이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인증하는 것이 우리가살아가는 세계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어떤 관계든 오래 지속되는 관계 언어에는 힘이 있다. 긍정적인 의미를 품은 관계 언어가 더 다양하게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랜선 이모처럼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사이여도 좋고, 반려기기처럼 내 삶에 꼭 붙어 있는 애착템이어도 좋다. 식집사처럼 반려식물을 키우는 기쁨이 가득 담긴 단어여도 좋다. ‘하모니는 관계이므로 모든 관계는 음악‘이라고 철학자 김진영이 말했다. 우리가 맺는 관계가 음악이라면, 나와 상대를 이어주는관계의 언어가 아름답기를 바랄 뿐이다. 관계의 언어가 아름답게 발전한 세계는 조화로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곳이리라. 각자 다른 음이 조화로 엮여 한 곡으로 완성되듯이, 새로운 관계언어가 연주하는 곡은 전보다 더 감미로울 것이다.

"힘은 무지에서 올 수 있다는 명제는 그다지 명성을 얻지못하고 있다. (…) 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조금 안다"는,
문화 비평가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의 말로 넷플릭스의 폐쇄자막사례를 설명할 수 있다. 비청각장애인은 청각장애인의 세계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비청각장애인의 청력은 힘이고,
그 힘이 우리를 무지하게 만든다.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한, 우리가 지닌 여러 힘이 알게 모르게 우리를 특권의 영역에 서게 하고, 그 위치가 우리의 무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2021년 도쿄 올림픽 폐회식 중계에서 KBS 이재후 아나운서는 이상으로 2021 도쿄 비장애인올림픽 중계방송을 마치겠습니다라고 맺음말을 했다. 이 말은 곧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었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언어 습관을 돌아보는 계기를 선사했다. ‘비장애인‘이라는 단어 덕분에 올림픽을 다른 차원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재후 아나운서는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방송에서도 같은 맺음말을 썼는데, 같은 말이어도 그 울림과 반향이 더 커진 것은 우리의 듣는 귀가 더 섬세해졌기 때문이다. 섬세한 단어 선택이 더 크게메아리치는 때를 만난 것이다.

차별의 언어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리베카 솔닛과 피에르 부르디외, 김지혜 저자까지 인용한 이유는(사실 더 많은 인용을 준비했으나 산만해질 듯해 모두 지웠다) 나의 차별 언어 감수성에 대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빈번히 실수를 저지르고 사는 내가 감히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괴하고 자책했다. ‘거지 같다‘는 말이 빈민 혐오임을 알아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벙어리장갑 대신손모아 장갑이나 엄지 장갑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한 지도 얼마되지 않았다. ‘찐따‘라는 단어가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비하하는 혐오 표현임을 모른 채 찌질하다는 말의 동의어쯤으로 여기며 자주 사용하기도 했다.

언어를 공부하는 방법에는 순서가 있다. 학이 먼저고습이 다음이다. 학이 새로이 배우는 것이라면 습은 그것을 반복해서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익히고 수련하는 과정이다.
새로 배운 차별의 언어들을 반복하지 않는 익힘, 그리고평등의 언어들을 반복하여 사용하는 익힘을 위해 나는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 꾸준한 반복으로 언젠가 내게 ‘평등한 언어감각‘이라는 근육이 볼록 튀어나오기를 바란다. 그 귀여운 근육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테니, 근손실을 막기 위해서 더 열심히 운동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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