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환기시키는 이 그래픽 서사에서저자는 나치 독일의 무거운 역사와자신의 가족사를 둘러싸고 분투한다." "이 작품에는 ‘기억하고‘ ‘되돌아보고‘ ‘바로잡고‘ ‘바로 세우려는‘ 쉼 없는 노력,역사의 전모를 파악하고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다."
"잠들지 못하는 양심" 세계 속에서 독일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놀라운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전후 2세대 독일인의 내면 풍경을 처음 엿볼 수 있었다. 전후 2세대의 내면세계가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 세대가 68혁명 이후 이루어진 교육개혁에 의해 탄생한 첫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아우슈비츠 교육‘이라고 불리는 과거청산 교육을 받은 최초 세대에게 나치 과거가 어떻게 이해되고 수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전후 2세대 독일인에게 ‘독일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작품은 새로운 세대 독일인의 정체성 문제를 깊이 탐색하고 있다. 정신적 고향을 상실하고 과거의 시간을 부정해야 하는 독일의 젊은 세대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오늘을 사는 독일인에게 가장 예민한 정체성 문제를 이 작품은 추적한다. 그리고독일인으로서 부정적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프게 묻고 있다. 단아한 다의성의 언어가 주는 깊고 처연한 여운이 독자의 가슴에 오래도록 머문다."
「나는 독일인입니다』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독일의경우 68혁명 이후 과거청산이 상당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우리의 경우 지난 한 세기동안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는 ‘기이한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식민시대의과거와 냉전시대의 과거라는 이 ‘이중의 과거청산‘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어찌 보면 독일인보다 한국인에게 더 큰 울림을 주는 책이다. 세계 어느 나라 독자보다 한국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리라 확신한다
. 테오도어 아도르노에 따르면 "과거청산"이란 "과거에 종결점을 찍고 가능하면 그것 자체를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것을 진지하게 정리하고, 밝은 의식으로 과거의 미몽을깨부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독일인입니다」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과거청산에충실한 작품이다. ‘진지한 정리‘를 통해 ‘밝은 의식‘으로 ‘과거의 미몽‘을 깨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의 반복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본다. 그는 "주체로의전환"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그러한 비행을 저지를 수 있도록 만든 메커니즘을 인식해야하고, 그들 자신에게 이러한 메커니즘을 보여주어야 하며, 그 메커니즘에 대한 일반적인 의식을일깨움으로써 또다시 그렇게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죄는 살해당한 자에게있지 않다. 죄가 있는 것은 오직 아무런 소신 없이 증오와 공격적 분노를 그들에게 쏟아낸사람들이다. 그러한 무소신은 극복되어야 하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외부로 돌리지말아야 한다. 교육은 비판적인 자기성찰을 위한 교육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나는 독일인입니다』는 아도르노의 이러한 교육담론에 의해 1970년대에 이루어진 교육개혁의열매라고도 볼 수 있다. 노라 크루크가 가족사를 통해 과거와 만나는 태도는 바로 아도르노적의미의 ‘과거청산‘의 모범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라 크루크가 자신과 가족의 역사를 진지하게돌아보는 과정은 그 자체가 독일의 과거청산 교육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반증하고 있다.
진실에 대한 집요한 추구가 이 책을 관통하는 정신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작고 사소한 것‘ 에 있다. 역사를 지배자들의 ‘정의 권력‘(Definitionsmacht)에 내맡기지 않겠다는 것, 사적진실을 통해 공적 해석의 폭력에 맞서겠다는 강한 의지가 이 아름다운 책에는 있다.
정체성은 잡으려 하면 할수록 달아나는 그림자와 같다. 과거로의 여정을 통해 정체성의 근원에접근할 수록 노라 크루크의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점점 더 희미해진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만존재하는 나라, 국기도 국가도 없고, 국민이라고는 단 한 사람뿐인 나라에서 온 스파이 같다." 크루크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이르게 된다. 독일인으로서 부정적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 작품은 아프게 묻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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