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샤워기와 전자레인지에 불과한 혁신이라 특별히 대단하진 않지만, 누군가는 이 기술을 통해 스스로 살아갈 더 나은 기회를 얻는다.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안고 더 오래 살아가며 동시에많은 사람이 이전에는 몸이 불편한 사람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비장애인‘으로 재분류된다. 어떻게 생각하든 많은 사람에게노년의 삶이 더 어려워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를 죽이는질환에서 도망친다는 것은 삶을 힘겹게 만드는 것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더 많은 사람이 아주 오래 살게 되는 시점에 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나이를 먹는지 제대로 모르며 그렇게 나이가 많은 사람을 돌보면서 어울려 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을 알았던 적도 없다. 우리는 노쇠라는 큰 문제를 마주할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건 누구나 곱씹어보고 싶은 주제가 아니다. 나이를 아주 많이 먹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거나 나이가 아주 많은사람을 사랑할 때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파도가 바위투성이로 된 만에 들이치듯 수많은 질문이 요동치는데도 우리는이런 질문을 정직하게 하는 방법을 모른다. 이런 질문을 해도괜찮을까? 이런 질문을 떠올려도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