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대는 ‘비난의 일상화로 인해 더 추동력을 얻는다.
무엇이 자기에게 옳은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타인들의 삶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소리치는 이야기들이주목을 얻는다. 유튜브에만 하더라도 ‘이렇게 살면 망합니다‘류의 콘텐츠가 범람하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타인을 비난하는 댓글이 엄청나게 달리기도 한다. 독설의 유행은꺼질 줄 모르고, 저격은 가장 흥행하기 좋은 콘텐츠가 되었다. 유명인들이 한 사소한 실수들에 벌떼같이 몰려들어서 그를 비난하고 끌어내는 일도 매일같이 일어난다. 이 시대생존법은 ‘어떻게 하면 비난받지 않느냐‘가 되었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영화 <원더> 중)

어느 날 우연히 지구의 자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스쳐 지나가듯 내레이션 한 줄이 들렸다. 지렁이는 비가올 때, 숨을 쉬기 위해 땅 밖으로 나온다는 말이었다. 비가오면 땅속에 물이 들어차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익사를하기 위해 땅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보통은 비가 그치고 땅이 마르면 다시 땅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아스팔트까지 나온 지렁이는 애꿎은 아스팔트에 머리만 박다가 결국 말라 죽고 만다.

그러니까 지렁이의 죽음은 물에 대한 탐욕 때문이 아니라익사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때문이었다. 지렁이가 어리석기 때문도 아니었다. 자연의 흙이었다면 죽을 리 없는 지렁이가 인간이 만든 아스팔트 때문에 말라 죽게 되는 것이다. 그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탐욕 때문이 아니라 살아남으려다가 죽는다는 것, 이 사실이 묘하게 뼈아팠다. 나는 지렁이를 오해하고 있었고 그것도 나쁘게 오해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탐욕을 상정했던 것이다.

‘그 어느 무렵‘부터 나는 그런 사람을 점점 모르게 되어갔다.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 한들 나는 그의 이기심을 잘 들여다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저 사람의 순수한 선의나 호의를 더믿게 되었다. 그것은 지렁이가 탐욕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일과 분명한 접점이 있었다.

타인에 대한 이해, 혹은 생명에 대한 연민과 관련 있는 일이었다. 그런 마음이 조금씩 채워질수록 어떤 선입관은 서서히 밀려나거나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그것은 인간과 사물의다른 측면을 보는 일이었다. 또 다른 시야를 가지는 일이었고 삶을 다소 다르게 대할 줄 알게 되는 일이었다. 생각건대그것은 나쁜 일이라기보다는 좋은 일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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