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쪽의 책에서 단 4쪽밖에 나오지 않는 단어가 어째서 사람들에게 이토록 특별한 인상을 주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나름대로 추리하자면 ‘엠퍼시’를 다룬 책이나 기사는 전부터 일본에 많이 소개되었지만 대부분 ‘엠퍼시’를 ‘공감’이라는 단어로 번역했고, 사람들이 이에 위화감을 느껴왔던 게 아닐까. 다들 오래전부터 ‘공감하지는 않지만 타인을 이해하는 일’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일’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한 ‘엠퍼시’라는 단어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영국에서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피해자와 가족의 마음을 상상하면 범인을 죽여버리고 싶다’라는 극단적인 목소리가 SNS에 떠돌고, 용의자를 호송하는 차량에 계란을 던지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에도 냉정하게 피해자와 가족의 마음이 되어본다면, 당사자들은 불행한 사건을 잊고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여 모르는 사람들의 행동으로 자꾸 사건이 뉴스가 되는 것을 민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가해자에게 복수할 마음을 먹는 것은 자신의 상상과 분노를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투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겠다며 실은 자기 신발을 신고 타인의 영역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꼴이다.

벽에 다양한 표정의 사람 사진을 붙이고 "이건 어떨 때 짓는 표정일까?" 하고 묻는다. 웃는 얼굴을 보며 "행복할 때", "초콜릿을 먹을 때"라고 대답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전혀 반응을 하지 않거나 표정에 어울리지 않는 대답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웃는 사람 얼굴을 가리키며 "엄청 혼이 났을 때"라고 대답했던 아이다. 엉터리로 대답해서 웃기려는 것인가 싶어 "응? 혼이 났을 때 이런 표정을 지을까?" 하고 되물었더니, 그 아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안 웃으면 혼나"라고 대답했다.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운다는, 감정과 표현의 회로가 올바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사재기는 대단히 이기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신을 위한 행동이 아니다. 커뮤니티 전체를 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염병처럼 커뮤니티 전체가 개선되지 않으면 만연하기 쉬운 병의 경우, 자신의 미시적인 행동이 거시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결국 미시적인 불행(코로나에 걸려 위중한 상황에 처하는 것과 같은)이 찾아온다.
이처럼 타인의 신발을 신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여 행동하는 일이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일이 되기도 한다. ‘이타적이 되면 이기적이 된다’는 역설적인 고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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