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연말에서 2022년 새해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에는 제니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읽었다. 제목에 대한 부연이 책에 등장하는데, 그에 따르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절반은 우리의 관심을 도구화하는 디지털 세계의 관심경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나머지 절반은 다른 무언가에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오델이 말하는 ‘다른 무언가‘는 실제 세계의 시간과 공간이다. 즉 시공간에 다시 연결되는 것은 우리가 그곳에서 서로 관심을 가지고 만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책은 언젠가부터 우리의 삶을 독점하고 있는 소셜미디어의관심경제에서 빠져나와 진짜로 보고 진짜로 만지고 진짜로 느끼는 우리의 삶을 수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기 위해서저자가 제안하는 몇 가지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 저항하기, 당장 거리로 나가 동네를, 자연을 미술관을 관찰해보기, 친구와 길고 사려깊은 대화나누기 등이다

책에 따르면 커피는 세계적으로 하루에 25억 잔씩 소비된다.
상상되지도 않는 이 엄청난 수요를 맞추기 위해 커피가 자라는 적도 주변의 열대 우림은 계속해서 커피 농장으로 바뀌고 있다. 세계 열대 우림의 절반 정도가 이미 사라졌고 지금도 매년 한반도면적 크기의 열대 우림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는 바람에 연평균 15~24도의 온도에서 자라는 커피의 재배지 역시 이동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기껏 일군 농장을 두고 또 다른 농장을 개발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적도 인근의 땅들이 죄다 커피 경작지로 바뀌며 생태계가 파괴되고 동물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들며 공 교수는 이런 무거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커피와 코로나19가 과연 서로 관계가 없을까요?"

나는 따로 검색을 조금 더 해보았다. 주요 커피 제조국에서 만들어낸 생두를 전 세계 각지로 운송하는 과정에서의 탄소배출량역시 어마어마하다는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그 밖에 불공정한노동 임금, 특히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임금 차별, 공정무역이 공정무역이 아니라는 문제 제기…….. 이런 상황을 읽게 된이상 나는 앞으로 죄책감 없이 ‘커피 마심‘을 향유할 순 없을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누가 그랬을까?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는 것은 고통이라고,

요즈음 나는 ‘커피 마심‘과 ‘커피‘를 분리해 보고 있다. 아침에일어나면 커피 원두와 그라인더를 찾는 대신 큰 물병에 끓인 물을붓고 보리차 티백을 담근다.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밥그릇과 물그릇을 바꾸어주는 등 다른 일을 하며 잠을 쫓는다. 그러고는 그사이 우러난 따끈한 보리차를 소파에 앉아 후후 불어 마신다. 텀블러에는 작두콩차를 넣어 다니고, 책상에 앉아 일을 할 때에는도라지차를 마시는 것으로 ‘커피 마심‘을 대신하고 있다. 아직 쉽지 않다. 뇌는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는 중이며 나는 툭하면 꾸벅꾸백 존다. 안절부절과 꾸벅꾸벅 사이에는 이런 생각들이 있다. 이보리차는 어디에서 왔을까. 고양이의 밥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이 작두콩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 도라지차를 아무걱정 없이 마셔도 괜찮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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