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있는 초소형 독립공화국우주피스가 그런 곳이었다. 리투아니아어로 ‘강 건너편이라는 이름처럼, 빌넬레강 너머에 자리한 예술인 공동체다. 1997년 4월 1일에 만우절 농담처럼 우주피스는 독립을 선포했다. 우주피스에는 계절마다 색이 바뀌는 네 개의 국기와 국가, 고유의 헌법과 화폐가 있다. 대통령이 있고 내각이수립돼 있으며, 물론 군대도 있다. 열두 명의 군인은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600명이나 되는 대사들도 활약중인데 대표하는 분야가 좀 이상하다. 고양이 대사, 개 대사, 바람 대사등등이니, 현재 공화국 대통령은 로마스 릴레이 키스로 시인이자 음악가, 영화감독이다. 대통령 스펙이 이 정도라면 말다하지 않았나.
오랫동안 유대인이 모여 살던 이곳은 유대인 대부분이 나치에게 학살당한 후 버려진 땅이 되었다. 폐허가 된 동네를 찾아온 이들은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이었다. 몸을 파는 여자와 집 없는 남자와 약에 중독된 청춘 남녀가수도와 전기가 끊긴 집들을 차지했다. 리투아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1991년 무렵, 이곳은 빌뉴스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에 이름을 올렸다. 평범한 이들이 발길을 끊은 곳에패기 넘치는 이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잃을 것 없어 두려울 것도 없는 가난한 예술가들이었다. 대부분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했다(7000명 남짓한 주민 중1000명이 자신의 직업을 예술가라고 밝힌다). 그들이 주축이되어 우주피스 공화국을 선포하고 20년이 지난 지금, 우주피스는 리투아니아의 청년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지역이되었다. 예술가와 보헤미안의 아지트가 되어 정기적인 패션축제, 시의 밤, 음악 콘서트와 전시회가 1년 내내 열리는 인기 지역으로 떠올랐다.
제1조. 모든 국민은 빌넬레 강변에 살 권리가 있고, 빌델레강은 국민 곁에 흐를 권리가 있다. 제5조, 누구나 개성적일 권리가 있다. 제8조, 누구나 익명의 보통의 존재가 될 권리가 있다. 제10조. 모든 국민은 고양이를 사랑하고 돌볼 권리가 있다. 제11조. 모든 국민은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개를 돌볼 권리가 있다. 제13조, 고양이는 집사를 사랑할 의무는 없으나 필요한경우 집사에게 협조해야 한다. 제20조. 누구도 폭력을 사용할 권리가 없다. 제32조. 모든 국민은 그들의 자유에 대한 책임이 있다.
‘행복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사랑할 권리‘와 더불어사랑받지 않을 권리‘도 주어진다. 침묵할 권리‘가 인정되고울 수 있는 권리’와 ‘두려워하지 않을 권리‘가 받아들여지지만 권리를 거부할 권리‘와 ‘가끔은 의무를 자각하지 않을 권리‘ 역시 부여된다. 모든 것을 의심할 권리도 있으며 실수할권리’와 ‘게으를 권리도 누릴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내 가슴짜릿해졌다. 나야말로 이 공화국에 어울리는 시민이라는확신과 함께. 내 인생은 온갖 실수와 게으름의 환상적인 컬래버레이션에 다름 아니니.
우주피스 공화국의 국가 이념은 헌법 마지막 부분인39조부터 41조까지에 명시되어 있다. "싸우지 않고, 이기지않고, 항복하지 않는다." 이게 말이 되냐 싶은 사람은 공화국 시민이 될 자격이 없다. 우주피스가 나를 흔든 건 바로이 조항에 깃든 "있는 그대로의 나와 당신"을 인정하는 태도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매진〉의 유토피아는 만우절 헛소리에 불과할 테니. 이곳에서 산다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멋대로 사는 삶이 보장될것 같았다. 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으로 끝까지 남을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 이 공화국이 법률적 효력을 갖고
아, 무엇보다 할일 없이 삶을 낭비할 권리도 넣고 싶다. 10년 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숙소에서 한국인 자매를 만났다. 그곳에 석 달째 머무르면서 구슬을 꿴다고 했다. 그들은하루종일 외출도 하지 않고, 탱고도 보러 가지 않고, 그저구슬만 꿰고 있었다. 그때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여기까지 와서 구슬을 꿰고 있는지 의문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어떤시기가 있고, 그 통과의 방식이 쉽게 공감받기 힘들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구슬을 꿰며 시간을 소진해야 하는 어떤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뭐 하는 거야. 집에 있겠다, 이럴 거면, 한 번뿐인 인생을 저렇게 낭비하고 싶을까?‘ 타인의 이런 시선 따위와는 상관없이. 그러니빈둥거리고 인생을 탕진할 권리도 헌법에 명시해야겠다.
20년의 나이 차를 넘어 나는 그를 벗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렇게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건 우리 안의 순수한마음, 소년·소녀다움‘이 살아 있기 때문 아닐까. 사소한 일이나 우연한 만남에 온전히 기뻐하고 감탄하는 마음 말이다. 자신의 생각에 동의해주고 그것으로 다른 이와 이야기를나누고 또 글로 옮기는 누군가를 봤을 때 선생님은 즐겁게만남을 청하셨다. 내가 공감을 표현하니 소년처럼 "고마워요!"라고 외치셨다.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문제에 좌절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겠다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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