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더없이 유익한 것은 ‘읽고 난 후에 세상이 달리 보이는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책일수록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을 넓히고 우리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런 관점에서 휴먼카인드)는 훔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책이다. 인간의 본성을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하고, 그동안 가지고 있던 모든 통념들을 재고하게 만들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통찰의 죽비를 날린다.

저자도 인간은 선한 본성만 가진 존재라고 여기진 않는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더없이 복잡한 존재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세계관, 믿음, 정보, 뉴스가 가득한 곳에서 맨정신으로 있으면서 인간의 선한 본성을 믿기는 버겁다.

이런 사회에서, 사건 사고들로 가득 찬 뉴스는 우리의 확증편향을 더욱 부추긴다. 그렇지 않아도 원래 우리 뇌는 부정적인 사건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른바 ‘부정편향‘이라는 인지적 오류로 인해 비관적인 인간관은 더욱 강화된다. 여기에 덧붙여, 주어진 정보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뉴스인 사회에서 가용 가능한 정보들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보니 더욱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른바 가용성 편향‘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그렇게 사고할 수밖에.

왜 호모 사피엔스만이 결국 살아남았는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이래 이 질문은 학계를 넘어 우리 사회의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대규모 협력을 이끌어내어 결국인간이 승자가 되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과는 달리, 저자는 서로 따라하면서 빠르게 학습했던 호모 사피엔스의 모방을 통한 사회적 학습능력‘을 가장 중요한 승자 요인으로 손꼽았다. 다른 동물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인간의 사회적 학습능력은 대규모 집단으로 살면서 서로 협력하고 모방하면서 빠르게 공동학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로 가르쳐주고 서로모방을 허용함으로써 집단이 함께 더 똑똑해졌다는 주장이다. 모두가 이기적이었다면 불가능한 결과다. 이렇게 인간 사회의 탄생이 이기성에 기반하지 않고 이타성에 기반했기 때문에 지구의 승자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인간에게 자신의 현재 모습이 어떠한지 알려준다면 인간은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될 것이다.
안톤 체호프 Anton Chekhov(1860~1904)

이 모든 슬픈 이야기에서 나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사실은 주된행위자 모두가 같은 덫에 빠졌다는 점이다. 히틀러와 처칠, 루스벨트와린데만 등 이들 모두는 문명의 수준이 보기보다 얄팍하다는 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의 주장을 따랐다. 그들은 공습을 가하면 이런 허약한 외피는산산조각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폭격을 가할수록 문명의 껍데기는 점점 더 두꺼워졌다. 얇은 막이 아니라 굳은살이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