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큰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조그만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아침에 일어나 낯선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든지길을 가다 담장 너머 아이들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려 잠시발을 멈췄다든지매미 소리가 하늘 속으로 강물을 만들며 흘러가는 것을 문득느꼈다든지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지나간 밤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든지하루 종일 보고픈 마음이 떠나지 않아 가슴이 뻐근했다든지모처럼 개인 밤하늘 사이로 별 하나 찾아내어 숨겨놓은 소원을 빌었다든지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실은 우리들 이야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은 걸 우리는잘 알아요. 그래요, 우리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오래 헤어져 살면서도 스스로행복해지기로 해요. 그게 오늘의 약속이에요.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십일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십일월에서 십이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황토 흙의 알몸을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굽은 길은 굽게 가고곧은 길은 곧게 가고막판에는 나를 신고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제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두어 시간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걸었으므로만나지 못했을 뻔했던 싱그러운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물총새, 쪽빛 날갯짓도 보았으므로
놓일 곳에 놓인 그릇은 아름답다. 뿌리 내릴 곳에 뿌리 내린 나무는 아름답다. 꽃필 때를 알아 피운 꽃은 아름답다. 쓰일 곳에 쓰인 인간의 말 또한 아름답다.
때로 내 눈에서도소금물이 나온다. 아마도 내 눈 속에는바다가 한 채씩 살고 있나 보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아름다워졌습니다.
하루의 좋은 시간을다른 곳에 다 써 먹고창문에 어둠 깃들어서야그댈 생각해낸다그댈 생각하고그대에게 편지를 쓴다. 너무 섭섭히 생각 마시압,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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