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마법처럼 서로 다른 생각을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맨스플레인 mansplain‘이란 용어를 유행시키며(사실 그녀가 만든 용어는 아닌데, 여성 독자들이여, 이미 알고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굳이 설명하는 아이러니를 부디 용서하기 바란다) 더욱 유명해진 리베카 솔닛은 저서 『걷기의 인문학』에서 훨씬 더 시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걷기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풍경을 지나쳐가는 일은 일련의 생각을 지나쳐가는과정과 반향하거나 그것을 자극한다."
느리게 걷기가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속도와 생산성, 무엇보다 바쁘기 being busy‘에 중독된 상태다. 바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며 중요한 사람이란 환상에 사로잡혀 자만을 감추려는 시늉도 없이 바쁨busy-ness‘을 과시한다.
소심한 본성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모욕감을 느낄 때 조금더 침착해지는 법을 이후 배웠다. 모욕은 주는 쪽과 받는 쪽으로 나뉜다. 전자에 대해서는 통제권이 없으나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것이라면 얼마큼 통제가 가능하다. 스토아철학에는 바위를 모욕해보라‘는 금언이 있다. 무슨 소리를한들 바위는 꿈쩍도 안 한다.
공동체란 본질적으로 좀 지저분하고 번거로운 법이다. 생활환경을 통제할 자본이 있을 때 우리가 먼저 하는 일은 타인들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소중한 생활공간에 접근하고 값비싼 자동차를 만지고 귀찮게 말걸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유대의 상실이다. 아현동 옛 주민들에겐 선택의 여지조차 주어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생각하면 정신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결정에 좋은 약이고("나이 여든이 되어 여생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지금 내가 무엇을 했기를 원할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끔 한다. 일상의 근심은 대부분 사소한 것임을 떠올리게 해 큰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볼수 있게 한다. 우리가 백 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백 년후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떠올려보면 겸손해진다. 장 폴사르트르는 죽음을 알 때 우리는 인습과 한낱 따분한 실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필사적인 창조성이 자극될 수 있다고했다. 스토아학파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도 묵상할 것을 권면한다.
바보는 삶이 본질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똑똑한 사람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의미하다. 는 걸 알면서도 나름의 방식대로 살며 즐긴다. 무의미하게진정하고 무의미하게 즐거운 삶을 사는 것이 내게는 가장 이상적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제 우리에겐 더이상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속할 공동체가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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