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인류가 지속되는 한 인간의 기억 속에 영원히 좋은것으로 남을 자신만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준 사람들의이야기를 함께 나누려고 한다. 조용히 빛을 발하는 사람들의이야기다. 이 사람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단어가 무엇인지알고 있었고 자신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정확히 말하는기쁨을 누려봤다. 소박한 이야기도 있고 무겁고도 가벼운-현실에 뿌리를 깊숙이 박고 있다는 점에서 무겁지만 영혼을높이 올려준다는 점에서 가볍다- 이야기도 있다.
이 사람들이 없다면 세계는 훨씬 더 황량해질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 현실을 다른 현실보다 신뢰하기 때문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나는 사랑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우리 모두 행복할 가능성에 내기를 걸고 싶다. 내가 지금부터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나’라는 단어에서 나온 이야기가이 슬픈 세상에 어떤 기쁨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대답이 되길 바란다.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수년 전, 나는 제작하기 쉽지 않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자기 자신을 말하기〉란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누구나 출연할 수 있지만, 출연자 모두 지켜야 할 엄격한 규칙이 한 가지 있다. 그규칙은 자기 자신을 말하되 특정한 ‘단어’ 몇 가지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신의 삶에 가장 중요한,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 안 된다. 그리고 채식주의자들은 ‘채식‘이라는 단어를, 서점 주인은 ‘서점‘이라는 단어를, 라디오 피디는 ‘라디오‘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 즉 그단어 없이는 자기 자신을 말할 수 없거나, 자기 자신이 더이상 자기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단어가 금지되는것이다. 그 금지 단어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피디가 아니라 출연자 자신뿐이다. 자기 자신을 말하기 이전에 자기질문이 있는 것이다. ‘그것 없이는 나를 말할 수 없는 단어가 뭐지? 그런 게 있기는 있나? 그 단어가 왜 나에게 중요하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자신의 삶을 꽤나 뒤적거려볼 수밖에 없고 그 과정부터가 프로그램의 시작이다.

보르헤스는 자신의 인생은 열 개 정도의 단어로 압축될 것이라고 했다. 시간, 불멸, 거울, 미로, 실명, 시는 보르헤스가 평생 열정을 기울여 그 의미를 확장시키려고 노력한 단어다. 위화 역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서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등 열 개의 단어로 그의 인생을 그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했다. 오에 겐자부로의 단어는 이인조, 장애다. 그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말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는 것을 소설가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시작할 때 중요한 건 단순히 이거예요.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 성장하고싶어 하는 씨앗이죠. 여러분은 주의 깊게, 조심스럽게,그리고 끈기 있게 싹을 북돋고 움을 틔우게 할수 있어요. [….] 그 이야기가 온전하고 진실되게스스로를 갖추게 놓아둘 수 있다면, 그게 정말로 무슨이야기이며 무슨 말을 하는지, 왜 그 이야기를 하고싶은지 알게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놀라게 될지도몰라요. 여러분은 달리아를 심었다고 생각했는데, 튀어나온 걸 보니 가지인 거죠! *

한 사람의 좋은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좋은 이야기는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부드럽게 각인되고 남아서 우리의 자아를 바꾼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드러움 중 가장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것은 인간의 변화다. 내 이야기를 존 버저는 이렇게 정확한 문장으로 써버렸다. "어떤 이야기에 감명을 받거나 울림을 얻으면, 그 이야기는 우리의 본질적인 일부가 되는, 혹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낳고, 이 일부가, 그게작은 것이든 광대한 것이든 상관없이, 말하자면 그 이야기의 후예 혹은 후계자가 된다. *

우리 존재는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만큼이나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고 무엇을 상상하느냐에도 달려 있다. 이야기 안에는 숨어 있는 사냥꾼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한번사로잡힌 이야기에서 헤어 나올 수 없고 우리 삶은 우리가들었던 이야기들의 결론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가 가치를 두는 이야기 안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바로 그것, 우리의 미래, 우리의 최종 결론을 암시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자기 자신을 말하기〉를 상상하면 자꾸만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프랑스 작가 모파상은 플로베르를 흠모하고 존경했다. 모파상은 첫 작품을 쓰고 나자 플로베르에게 보냈고속이 바작바작 타는 긴장감 속에서 대가의 반응을 기다렸다. 마침내 작품을 다 읽은 플로베르는 모파상에게 이렇게말했다.
"자네 작품은 틀림없는 걸작이야… 단, 두 단어만 바꾸면."

단 두 단어만 바꾸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당장은작품 하나가 떠오른다. 주제 사라마구의 『리스본 쟁탈전은 인생에 대한 체념과 외로움만이 가득했던 교정자 라이문드 실바가 두 단어도 아니고 딱 ‘한 단어를 바꾸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할 것이다" 라는 단어를 "… 하지 않을 것이다"로 바꿨다). 단어를 바꾼 뒤 라이문드 실바는 그전처럼 살 수없게 된다. 그 뒤로 그에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 꿈같은 일이 일어난다.

"저, 선생님, 알고 싶은 게 있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작은 물고기는 놔주고 금지 어종은 풀어주고 지킬 것은 지키는 사람이 되었어요?"
어부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이상한 질문은 처음 받아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부의 등 뒤로 누구의 소유도 아닌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건 내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아니었다. 슬픔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슬픔은 사라지는단어가 아니다. 슬픔은 오겠다는 기별도 없이 제멋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수시로 온다. 눈을 감아도 온다. 슬픔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눈꺼풀은 없다. 슬픔은 거친 밤을 기진맥진 통과하게 만든다. 슬픔은 자신을 진지하게 대하라요구하는 손님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슬픔이야말로딸에게서 엄마가 받은 유산인걸.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슬픔도 눈물처럼 어디론가는 흘러가야 한다.

연대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일로 알게 된 모든 것을 당신께 알려드릴게요. 온 힘을다해 당신을 도울게요. 당신은 나보다 덜 슬프도록요.

"빛이 안 나도 괜찮아. 하지만 따뜻해야 해."
어라, 그 말이 꽤 좋게 들렸어요. 그날 당장 집에 가서우리 애들한테도 그렇게 말했는데 제가 진심으로말하고 있더라고요. 언니는 배움은 짧지만 제 눈엔누구보다도 인생에 대해 아는 게 많아 보였어요.
언니는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시할머니부터 모시고살았어요. 대가족의 맏며느리면서 시장에 와서장사하는데 저보다 훨씬 힘들 거예요.

"상대방 입장에 서서 한번 생각해볼래?"
언니랑 있으면 평온해져요. 내가 뭔 말을 하는 언니입으로 들어가면 더 괜찮은 걸로 변해서 나와요.
언니랑 이야기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아니고 사는 게 더 쉬워지지도 않아요. 하지만 언니랑있으면 사는 것이 더 괜찮은 일이 돼요.

네. 처음에는 무작정 썼어요. 사실 나 같은 사람의하루하루가 무슨 쓸 가치가 있나 싶었는데요. 집에돌아가면 뭔가를 쓸 거란 걸 나 스스로 아니까조금씩 마음가짐이 바뀌더라고요. 일하다가 잠깐 본구름이라도 조금 더 기억해두고 싶어지고 그랬어요.
사실 내 삶은 기록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고, 매일매일똑같고, 내일도 똑같은 날이 될 것이고, 쓸 가치도, 살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그런 생각을 안하게 되었어요.

새댁이 이사 나가면서 나한테 선물해준 거예요. 정말좋은 집주인 만나서 편히 지내다 간다고요. 그 컵으로하루에 한 번씩 5분이나 10분 정도 뭔가를 마셔요.
커피일 때도 있고 차일 때도 있고. 그 컵을 들고 멍하니베란다 밖의 나무들을 봐요. 우리 아파트가 1층이라나무들이 가까워요. 나를 좋아했던 사람이 준 찻잔을손에 들고 그렇게 몇 그루 나무에 불과하지만 그래도자연 속에 있으면 이상한 존재감이 생겨요. 누군가에게좋은 사람이었던 나, 그런 게 조금씩 보여요.
우울증이란 게 사실은 자신의 존재감도 느끼지 못하고자신을 좋아하기 힘들어서 생겨난 일이라고 하잖아요.
제가 멘토라고 하니까 이상하지만 우울증에서벗어나게 된 이야기는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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