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처음 읽었을 땐 노인과 바다, 그리고 청새치만 눈에 들어왔더랬다. 노인이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1851)에 나오는 이슈메일, 그러니까 바닷속에 수장된 피쿼드호의 유일한 생존자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이슈메일이 나이 들어 다시 바다로 나가 또 한 번의 사투를 벌이는 것 같았달까.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으니 바다나 청새치보다는 소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도시에서는 이제 아무도 거창한 감정을 품지 않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단조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끝날 때도 되었는데" 하고 시민들은말하곤 했다. (199쪽)

허무와 부조리, 패배감, 부질없음 같은 생각에 빠지기엔 남사스러워진 나이가 된 것만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물리쳐버릴 만큼 긍정적이 된 것도 아니다. 외려 부정적인 생각들을 긍정하게 되었달까. 삶은 부조리하고 허무하며누구에게나 패배감을 안겨줄 뿐이니 부질없이 애쓸 필요 없다는 생각도 삶에는 필요할 테니까. 인용문처럼 거창한 생각 같은 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그저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가끔씩 "이젠 끝날 때도 되었는데" 하고 혼잣말을 하게만드는 것, 그것도 삶의 한 단면 아니겠는가. 그러니 페스트와 싸우는 ‘코로나 19와 싸우는 엄청난 적과 싸우고 있다는생각은 버려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는 오래 버틸 수 없을 테니까. 물론 마스크는 꼭 쓴 채로 버텨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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