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어서 행복해졌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미국 가수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는 돈 때문에 자신의 삶에 달라진 점은 별로 없다고 답했다. "돈을 쓰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뭘더 하겠어요? 점심을 두 번 먹을까요?"

남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선생 또는 작가라거나, 습관이나 외모를 설명하거나, 가족이나 내가 사는 동네, 고향에 관해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건 그런 것들은 내가 누군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나 자신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나는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내가 누가 아닌지로 시선을 돌린다. 만약 과거에 뭔가가 달랐더라면 내가 살았을 삶들에 대해, 내가 될 수도 있었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그과거의 순간들이 있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이 코네티컷주를떠나지 않았다면, 내가 다른 대학교에 갔다면….

우리는 한순간 우리가 되는 데 실패했지만 도저히 잊을 수 없는온전한 인간이 우리들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될수도 있었을 모든 것, 우리가 놓친 모든 것을 보았다. 그래서 한순간 다른 사람의 몫을 아까워했다. 마치 케이크를 자를 때처럼,
단 하나뿐인 케이크를 자를 때 자신의 몫이 작아지는 것을 지켜보는 아이들처럼. (버지니아 울프)

이해를 돕기 위해 일화를 하나 들겠다. 1913년 어느 여름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이탈리아 돌로미티의 한 시골 마을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그날 릴케가 자신을 둘러싼 아름다.
움이 모두 죽음을 맞는다는 생각에 우울해했다고 전한다. "모두사라지겠지." 릴케는 말했다. "겨울이 오면, 인간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그렇듯" 릴케다운, 지극히 비관적인 지적이었다. 몇 년뒤 릴케는 행복이란 "곧 겪게 될 상실에서 지나치게 성급하게 취한 이득"이라고 불렀다. 그는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장 덧없는,
모든 사람이 한때, 오직 한때, 그것이 전부,
그리고 우리도 또한 한때, 다시 없는.

삶은 배타적이다. 삶을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이야기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삶과 이야기 모두를 이런 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흔히 우리의 삶을 이야기로 대하기 때문이다. 소설가이자 사회비평가인폴 굿맨 Paul Goodman은 이렇게 말한다. 이야기가 "시작할 때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중반 정도 되면 가능한 것들이 있다. 끝날 때는모든 것이 필연이다." 성장은 배제하고 확정한다. 적어도 그런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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