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혈연관계를 일컬어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게다가 테야르는 스스로 외부인이라 생각하는 많은 이들을 자신은 그리스도의 참된 형제들로 여긴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사실 행동이 아닌 말로만 열심히 그리스도를 "주님,주님" 하고 부르는 이들보다 그들이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있다.
하느님의 말씀이 몸소 인성을 취하셨다. 육화를 가리키는 독일어 ‘멘쉬베르둥Menschwerdung은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만한 역동적인 것을 가리킨다. 사람이 되어 가는 활동인 것이다. 라너의 관점에서, 하느님의 사람 됨‘(Menschwerdung Gottes)에 대한 인간의 가장 참된응답은 ‘인간의 사람 됨‘(Menschwerdung des Menschen)이다.
하느님 앞에서 오롯이 자신을 위해서만, 말하자면 기도하지 않는형제들을 기억하지 않으면서 기도하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이있을까? … 그런 사람은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에서, 또 동료 인간에 대한 책임감에서 기도할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현존이나 부재를 체험하면 할수록 자신의 감정이나 무감각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기도하지 않는 이들이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흔적을 넌지시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이 말하는 부재하시는 하느님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성인의 통공(communio sanctorum) 안에서 일어난다. 넓게 보면 성인의 통공이란, 십자가 위의 하느님께서 그들을 위해 완전한 버림받음을 견디고 겪으신 모든 이의 공동체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모든인간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인도의 어느 예수회원에게 배운 대로 그저 숨만 쉰다. 내모든 근심과 걱정과 슬픔을 내뱉기 위해 날숨을, 그분의 평화와 기쁨과 힘을 들이키기 위해 들숨을 쉰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친 다음 다시바다로 돌아가듯이, 인간도 이런 들숨과 날숨의 리듬 안에서 바오로사도의 말을 몸으로도 거의 체험할 수 있다. "내가 약할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10). 그러나 단지 나만 바라보는 것은아니다. 인간은 아무도 섬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교회의 근심과 상처와 약함은 또한 나의 약함이다.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의 슬픔과 어둠은 또한 나의 깊은 골이다. 그러나썰물이 다시 밀물로 바뀌듯, 우리도 평화와 힘과 기쁨의 물결을 느낄수 있거나 적어도 넌지시 알아챌 수 있다. 성경 말씀처럼 "주님께서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느헤8,10 참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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