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관련한 뇌의 화학물질이 분비된다. 그러면 몸이 느최초의 화학반응이 혈류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는 데에90초가 걸린다고 한다. 90초가 지나도 계속 분노를 느끼는 것은이 화학반응을 지속시키겠다는 나의 선택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사용하는 목욕탕의 이미지가 그런 것이다. 일단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90초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작정한다. 다만 이 시간 동안 나 자신의 몸의 반응을 세심하고 알아차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선택권은 온전히 내게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몸의 느낌을 존중하는 것이다. 내가 뜨거운 목욕물의 이미지를 쓰는 이유도 여기에있다. 화가 나면 정말로 뜨거운 목욕물에 들어간 것처럼 체온이오르고 숨을 멈추게 된다. 그 시간 동안 나 자신을 자책하지도않고 나를 분노케 한 상황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그저 몸을 가진 동물로서 있는 그대로 분노를 느낀다. 그러면 이 순간조차도꽤나 달콤하다.

우뇌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뜻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말하는 것일까? 우뇌는 매 순간 깨달음을 준다. 가령 저자는 호박을 먹지 않았다. ‘나는 호박을 싫어해. 이것을 철석같이믿는 것이 좌뇌다. 좌뇌는 이런 자신에 대한 판단을 새롭게 하는것을 싫어하며 사고의 패턴을 반복한다. 그렇지만 우뇌는 매 순간이 새롭다. 어제 호박을 싫어했다고 오늘도 같을 리는 없다고판단하는 것이 우뇌가 하는 일이다. 저자는 이제 호박을 아주 좋아하게 됐다. 이렇게 다른 좌뇌와 우뇌를 함께 쓰기 위해 우리는섣부른 판단을 피하고 ‘자신만의 마음의 정원‘을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금 당장 전파사에 가서 전기충격기를 사세요. 화를 한 번내자마자 방에 들어가서 그걸로 몸을 지져버려요. 그러면 고통을 겪으면서 기절을 할 거예요. 그렇게 몇 번만 하면 다 고쳐집니다."

스님은 설명한다. 화내는 건 습관이기 때문에, 절대 고쳐지지않는다고. 그래도 고치려면 화를 냈을 때 전기충격기의 고통을연상하게 해서 저절로 화가 안 나게 하는 방법밖에 없는 거라고.
테일러가 말하는 뇌의 회로를 선택한다는 것과 같은 원리일 것이다. 분노와 고통을 새로운 회로로 연결시키라는 말이다.

그게 거짓말이지. 안 고쳐도 살 만한 거 아니에요? 그냥화내고 살아요. 그렇게 살면, 애나 배우자가 나중에 당신을 떠날수도 있고, 싫어서 상대도 안 해줄 가능성이 높지만, 그건 당할때 ‘내 탓이다‘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그냥 살면 돼요."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내가 정말 변화를 원하는가‘라고 냉정하게 질문하는 것이다.

소시오미터 이론에 따르면 남들의 긍정적시각을 제대로 인식할 때 자아 이미지가 좋아진다. 내가 환영받는 곳,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역할을 발견할 줄 아는 건 삶을 행복하게 이끌어 갈 능력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남의 인정에 목을 매라는 뜻은 아니다. 남의 의견을애써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누구인가를 내가 의식적으로정할 수 있으면 된다.

내가 가진 건 자존감이 아니라 적극적인 탐구 끝에 얻은 나에대한 이해다. 언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지, 무엇이 나를채워주는지, 어떤 거리감이 좋은지, 나를 아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쫓아다니지 않을 수 있다. 시골에 오지 않아도 궁금해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다.

나를 묶어두지 않는다.
나는 어떤 일에도 100퍼센트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처음 시작할 때, 항상 생각하는 건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다. 취미 생활을 할 때도 장비를 먼저 준비하지 않는다. 회사에 다닐 때도, 박사 공부를 할 때도, 갑자기 그만두어도 억울하지않을 정도로 대충 한다. 다음에 할 일, 내일 하고 싶은 일을 하기위한 에너지나 돈이 항상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 인생관이다. 나는 나 자신의 삶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한 끝에 지쳐버려서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게 되는 것도싫고 좋아하는 사람과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는 즐거움을 놓치기도 싫다. 그리고 어떤 일이고 지겨워지거나 멈추고 싶을 때 언제라도 그럴 수 있는 자유도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이 가치들이중요한 만큼 세속적인 욕망은 약하다. 배수의 진을 치지도, 있는

인생에서 내가 꾸준히 노력하는 건 바로 열심히 노력하지 않기‘이다. 그럼 가만히 살면 될 것 같지만 의식적으로 경계하지않으면 생각보다 어렵다. 나는 모든 걸 남김없이 불살랐다고 의심 없이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최선을 다한 적은 없지만 나 역시 어떤 일을 할 때 서서히 나를 잊게 되고, 마구 달려가 끝을 보고 싶을 만큼 몰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아, 안 돼, 이렇게 열심히 하면 안 되지‘ 하며 멈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방법은 단순하다. 끝을 생각한다. 빵 만들기 싫어질 때, 빵을그만 만들 때를 생각한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아직 모른다. 지금은 죽을 때까지 빵을 만들고 싶으니까. 그때를 생각하면 일단 도구를 사는 것을 극도로 삼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천연 발효 기술까지 배우고픈 마음이 잠잠해진다. 언제든지 빵 굽기를 그만둬도 미련도 귀찮은 뒷정리도 없는 상태로 머무를 수 있다.
내게 미니멀리즘이나 소비 줄이기가 쉬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새 물건을 사고 싶거나 필요할 때, 내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돈이나 쓸모가 아니다. 물건의 끝을 생각한다. 버리고 싶어질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상상한다. 소파나 식탁 같은 큰 가구, 텔레비

인간은 순간을 살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끝을 상상할 수 있는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괴롭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삶의 충만함을 이해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끝의 아름다움을그렇게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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