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작아질 때만, 겨자씨 한 알만 하게 작아질때만 열매를 맺고 그 힘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작은 믿음이 꼭 죄스러운 부족한 믿음의 열매는 아닐 것이다. 작은 믿음‘이 때로는 ‘커다란 믿음 보다 더 많은 생명과 진리를 담고 있을 수도 있다. 씨앗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아무 쓸모 없이 사라지고, 죽어야만 큰 유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비유, 여기서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믿음에 적용할 수는 없을까? 인간의 삶에서나역사의 흐름 속에서 믿음도 철저한 축소와 죽음의 시간을 겪어야 하는 것 아닐까? 작은 것이 큰 것보다 앞자리를 차지하고, 잃는 것이 얻는 것이며, 줄어듦과 작아짐이 곧 하느님의 활동을 앞당기기 위한 개방성을 뜻하는 복음의 역설적 논리에 비추어 이 상황을 이해한다면, 이 위기는 실은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때"(루카 19,44 참조), 카이로스, 적절한 때가 아닐까?

‘하느님의 백성‘인 인간이 자신들 앞날의 여정에 걸리적거리며방해하는 것들을 버리지 못할 때, 때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불편하게느낄 구원의 방식들을 쓰기도 하신다. 니체가 말한 ‘소멸하다‘라는 말은 좌초하여 사라진다는 의미뿐 아니라, 문자 그대로 바닥으로 가다‘, 알맹이를 건드린다는 뜻도 있다.

이 첫 번째 묵상을 기도로 마무리하려 한다. 주님, 저희의 신심이저희 확신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면 이 커다란 믿음을 저희에게서 거두어 가소서. 너무나 인간적인‘ 저희의 종교를 걷어 가시고 저희에게 ‘하느님의 믿음‘을 주소서. 당신 뜻이라면, 대신 저희에게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을 주소서. 작지만 당신의 힘으로 가득한 믿음을!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고 인정사정없이 남들을 제치고 나아가는 것이 규칙이 되어 버린 ‘이 세상‘은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이들에게 세 가지 선택지만 준다. 절망하여 체념하거나, 순응하여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거나, 그것도 아니면 약물이나 다른 수단으로 감각을 마비시켜 잠재우는 것이다. 시장에는 화학적 약물에서 종교적 약물까지 오만 가지 약물들이 나와 있다!

예수께서 장차 베드로 사도가 될 시몬에게 처음 가셨을 때, 베드로는 밤새 고기잡이에서 허탕을 치고 좌절한 어부들 사이에 있었다. (루카 5,1-11 참조). 예수께서는 어부들이 나름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희망과 생각과 기대가 한계에 이르렀다고 포기한 바로 그때, 그들에게 희망을 주신다.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신앙은 신뢰, 그것도 불가능한 것을신뢰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러나"라는 저 말 한마디에 베드로의 신앙 전체가 들어 있다. ‘다시 한번 시도해 보겠다는 그의 용기를 통해 드러나는 신뢰이다.

베드로와 예수의 이 첫 만남 장면은 똑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마지막 만남 장면에도 대응된다. 그 만남에서, 이 제자는 대단히열성적이다가 또 처참하리만큼 허물 많은 모습을 오갔다. 그런 모습에 충격을 받으셨을 법도 한 예수께서는 급기야는 당신을 모른다고세 번 부인하는 최악의 잘못을 저지른 베드로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다.
사랑의 길이란 ‘이 세상 논리의 눈에 ‘부조리함‘이라고 거듭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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