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계획도 준비도 없이 한 가족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국 시골로 향했다. 가진 것을 털어 허름한 시골집과 너른 땅을 마련한 그들은 실험하듯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여름이면 블랙베리를 따고 밀알을 즉석에서 갈아빵을 만드는 삶을, 벌써 7년째, 그들은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은 삶의 지혜를 손수 깨닫고 있다. 자본주의를완전히 떠나지 않고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덜 유명한 후속작이 하나 있다.
바로 『거울 나라의 앨리스다. 역시 수수께끼로 가득한 이 작품에는 붉은 여왕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녀는 아무리 오래 달려도 지치지 않는다. 영문도 모르고 헐떡이며 함께 달리던 앨리스는 잠시 멈춘 순간 어딘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붉은 여왕도 그녀의 신하들도 끊임없이 달리고 있지만 제자리에서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여왕이 그 비밀을 알려준다.
"여기에서는 말이야, 같은 자리에 있고 싶으면 있는 힘껏 달려야하는 거야."

있는 힘껏 달리면서도 그 마음에는 희망이 아니라 체념이 자리잡는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야. 어쩔 수 없어.’ 이런 이상한포기 상태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붉은 여왕은말한다. "이곳에서 어디로 가려면, 최선보다 두 배는 빨리 뛰어야 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조금씩 더 빨리 달릴 방법을 찾는다. 잠을 줄여보고, 점심시간을 쪼개보고, 출퇴근 시간도 활용한다. 그러나 열심히 사는 것과 의미 있게 사는 것은 다르다.

나는 삶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 삶이라는 녀석의 골수를 전부빨아먹고 싶다. 스파르타인처럼 굳건하게 삶을 살아내어, 삶이 아닌 것들을 전부 깨부수고, 기다란 낫을 넓게 휘둘러 삶이란 것을 바싹 깎아내고, 삶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구석으로몰아 더 이상 줄어들 수 없을 만큼 작은 핵심만 남도록.

어디에 있든, 어떤 방식으로 살든,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음미하는 법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모두가 자신의 일상이 갖고 있는,
위대함을 남김없이 캐내어봤으면 했다. 우리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자유가 있다. ‘어차피 사는 건 이런 거야. 그런 포기만큼은 내삶에서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바로 인생의 골수를 남김없이 먹겠다는 소로의 말에 담긴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이성공과 실패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되고,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의미, 나만의 배움이 된다. 그 삶을 예민한 시선으로

돈으로 온갖 시도를 해보았다. 한동안은 ‘소확행‘과 같은 사소한 사치가 좋아 보일 때도 있었고,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여 돈을모으는 무한도전에 몰두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돈을 아끼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돈이아껴야 할 그런 소중한 대상인가 싶어진다. 그렇다고 좋아 보이는 걸 사도 작고 확실한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돈을쓰지 않거나 쓰면서 얻는 즐거움은 행복도 아니고, 전혀 확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치열한 ‘자유‘다. .

우리 마을에 집, 농장, 헛간, 가축, 농기구 등을 물려받은 젊은이들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 이야말로 불운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얻는 것보다 없애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

충분히 고생스럽다. (…) 인간은 착각 때문에 노동한다. (..)- 필수라고들 하니,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이는 것에 매여서, 좀먹고 녹슬고 도둑이 훔쳐갈 수 있는 재화를 쌓느라 일을 한다.

진짜 질문은 하나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갖기 원하는 것, 혹은 잃기 두려워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가? 중요한 건 나를 부유하거나 가난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필요에 대해 착각하거나 착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가난한 내 가족 덕분이었다. 내 가족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실질적으로 그 어떤 것도갖기를 원하면서 애달파하지 않았다.
나는 바다와 함께 자랐다. 그 바다에서 가난은 풍성하고 찬란했다. 그런데 나는 바다를 잃었고, 그러자 온갖 호화로운사치품들은 우중충해졌고, 가난은 참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가난에도 참을 수 있는 가난이 있고 참을 수 없는 가난이 있다. 이 시대가 겪고 있는 가난이 바로 참을 수 없는 가난이 아닐까 싶다. 가난이 한 인간의 자격과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인격적 모욕이 되어버렸다. 모든 경험과 물건에 돈의 가치가매겨지는 순간 그 돈의 숫자는 냉혹한 평가의 기준이 된다.

가끔 우리 가족이 정기적 소득에 매달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부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때마다 있는 그대로 대답한다. "시골에 있는 이동식 날림 주택으로 이사하면 당장 저희처럼 살 수 있어요. 더운 물도 나오고 비도 안 새고 따뜻해요. 애들도 시골 학교를 보내면 학원비 걱정은 하고 싶어도 못해요. 학원이 없어요."
"차마, 어떻게 그렇게… 저희는 그럴 용기가 없어요. 그러니까대단하신 것 같아요."

태양빛과 바다는 단지 따뜻하고 넓다는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다. 그보다 가치를 있는 그대로 풍성하게 지켜주는 무엇이다.
사치품이 우중충한 것은 단지 허영 때문은 아니다. 지갑이나 차는 사치품이든 아니든 원래 가치가 있다. 차는 사람의 생활을 바꿔놓을 수 있고 지갑은 소중한 소지품을 담아 정리할 수 있으며그리고 인간 관계에서 무한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치품일 때 그 가능성은 차단된다. 사치품의 가장 큰 의미는
‘비싼 것, 흔히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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