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는 시간 이외에 하는 모든 행위 페이스북이라는주식회사가 제공하는 네트워크를 확인하는 것부터 삼성이나 화웨이가 생산한 휴대전화를 조작하고, 애플사가 생산한 아이패드에서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보는 일까지는 대부분 자본의 이윤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색‘이라는 존재방식도 증발되었지만, 사생활‘이라는 근대의 또 하나의 해방적측면도 말살되고 말았습니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이나 휴대전화위치 추적 등으로 각자의 현재 위치부터 한 시간 한 시간의 모든 행위까지 확인하고, 심지어 실시간으로 감시도 할 수 있는 세계에서 ‘사생활‘은 더 이상 논의할 의미조차 없습니다.

해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권력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말입니다. 되도록 권력을 분산시키고 견제해야 합니다. 조직은 항상적인 감시와 견제속에서 그저 심부름꾼으로서 일을 맡아보는 사람에 의해 굴러가야 하는 것이죠. 체제 내의 권력이든 반체제적 권력이든 권력그 자체가 악입니다. 어떨 때에 필요악일지 몰라도 어쨌든 악은악이죠. 권력이라는 독에 사람을 되도록 노출시키지 말아야 인권 수호가 가능해지고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확 줄어듭니다. 특히 혁명을 지향하는 조직체라면 더욱더 탈(脫)권력화되어야죠. 혁명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무권력적, 무계급적 사회를만들어내는 일이니까요.

우리나라 교육의 아주 큰 폐단은 세계사와 한국사를 따로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대개 선택 과목인 세계사는 선택을 받는 경우도 많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고졸자나 대졸자는 ‘광무개혁(光武改革)‘이나 ‘한일합병(韓日合件)’ 내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산업화, 민주화‘를 어렴풋이는 알아도 세계사적 맥락에서의의미는 전혀 모릅니다. 인식론적 민족주의라고나 할까요? 이런식으로 배우면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은 세계사적 맥락과도 무관하게, 오로지 ‘우리‘만의 자랑 내지 ‘우리’만의 수치가 되고 말지요. 더구나 그 ‘우리’라는 범주 안에, 예컨대 중국 동포나 구소련 고려인들은 아예 포함되지 않고, 북한사도 매우 단편적으로만 언급됩니다. 결국 ‘대한민국 사람‘은 학교 과정만 착실히 밟으면 오로지 대한민국의 통치자와 지식인‘들이 서술해준 ‘대한민국만의 과거‘를 아는 인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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