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 위에 서서 말에 말을 걸었어요."
말 위에 서서 말에 말을 걸다니. 몇 번 되새겨보지만 알 듯말 듯 잡히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말을 흘리지. 스케이트 타듯이, 말 위에서 미끄러지듯이 말이야. 그런데 나는 말 위에 멈춰서서 말에 말을 걸어요. 그 차이라는 거지. 사람들은 휙휙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말을 보는데, 나는 재미난 말이 있으면 멈춰서서 봐요. 1초만 멈춰 서서 생각해봐도 새 뜻이 나오고 새 음성이 나와."

"법이나 제도는 투표로 바꿀 수 있어. 하지만 세상에는 투표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많아요. 대부분의 문화와 과학이 그렇지. 제도는 법이나 혁명으로 하루아침에 뒤엎을 수 있지만문화는 달라요. 미국이 금주법을 만든 이후 지하에 술집 20만개가 더 생겼다고 하잖아. 한 나라의 언어나 풍습, 사고방식은100년이 걸려도 안 바뀌지. 고정관념과 인습에서 벗어나려면‘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해요. 반反체제든 친체제든 체제적 체제에 갇히면 창조의 무덤이 되는 거야. 문학도 마찬가지고."

"길 위에 우주인이 떨어뜨리고 간 물건이 있다고 합시다. 지구에는 없는 물건이죠. 그걸 주운 사람이 프랑스 사람이라면눈으로 샅샅이 뜯어보고, 독일 사람이라면 귀에 대고 흔들어볼겁니다. 프랑스의 시각 문화 대 독일의 청각 문화죠. 뛰고 나서 생각한다‘는 스페인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우선 발로 깨버리고 그 속을 보겠지요. 의회민주주의의 창시국인 영국은 정반대예요. 그게 뭐든 집으로 가져가 가족들의 투표로 어떻게 할지를 결정합니다. 군자君子의 나라에 사는 중국인은 우선 점잖게 사방을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괴춤‘
에 그걸 감추고 집으로 가져가서 생각하지요. 골동품처럼 모셔두고 그것이 뭔지 알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자, 다음은 일본사람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호기심으로 좌중이 조용해진다.
"그 물건을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해서 만들어봅니다. 그리고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나루호토(아, 그렇구나)!‘하며 무릎을칩니다."
당시 트랜지스터라디오와 손바닥 계산기로 유명해진 일본문화를 비꼰 농담이었다.

"어린 시절 모국어보다 일본어를 먼저 배우고 익혀야 했던뼈아픈 역사의 상흔에서 빚어진 것이지.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부족해요. 더 중요한 건 시선이지. 내가 일본 문화의 알몸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무런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일본 문화를 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가령 우리집 벽에는 붓과 책이 그려진 민속화가 걸려 있었는데, 일본친구의 집 다다미방 벽에는 일본도日本刀가 있었거든. 어쩌다 부엌에 있어야 할 식칼이 방 안에 있으면 어머니는 불상지물不祥之物(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며 얼른 치워버리셨어요. 그런 칼이 일본 친구네에선 벽에 걸려 있었으니 생활풍습 면에서 보자면 참으로 놀라운 차이였지. 하긴 서양 사람들은 아예 칼을 손에 들고 식사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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