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로 집단에서 이탈될경우 생존 확률이 떨어진다. 생존하기 위해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집단에 속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어떤 영화를 천만 명이 봤다고 하면 관객들이 더욱 쏠리게 되고, 시청률이 20퍼센트가 넘는 드라마라고 하면 사람들은 더 본다. 그래서 정치가는 자기네 정당의 지지율이 더 높다고 광고한다. 이런 현상은 약자에게 더 나타난다. 뉴욕에는 ‘뉴욕 메츠’와 ‘뉴욕 양키스’ 두 개의 야구팀이 있다. 백인을 지칭하는 ‘양키‘라는 이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민자들은 뉴욕 양키스 팬이 되는경우가 많다. 심리학자들은 그 이유가 사회적 약자인 이민자들이 더크고 강한 조직인 양키스에 속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 장소에 모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종교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중동의 유목 민족인 이슬람교도들은 같은 장소에 모일 수 없으니 대신 하루 다섯 번 메카를 향해서 기도드렸다. 이 방식으로 이슬람은 종교권력을 키울 수 있었다. 한 장소에 모일 수 없다면 시간이라도 맞추고 한 방향을 보아야 한다는 원리다. 이 원리를 수업에 대입해 보자. 온라인 수업을 하면 같은 모니터 영상을 보기 때문에 한 방향을 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생방송이 아닌 녹화 영상을 보게 되면같은 시간에 맞추지 못해서 선생님의 권위와 권력은 약해진다. 온라인 강의가 아무 때나 필요할 때 들을 수 있느냐, 아니면 생방송이냐에 따라서 선생님의 권위는 차이가 난다. 그래서 요즘 온라인 컨퍼런스를 진행하는 학회들은 자신들의 협회 행사의 권위를 위해서 강연을 실시간 온라인으로만 송출한다. 아무 때나 볼 수 있을 때와 이때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마치 ‘한정판 제품(리미티드 에디션)’과 같은 개념이다. 온라인 데이터를 한정판으로 만드는 방법은 실시간 중계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권을 유지하기 위해 실시간 온라인 수업으로 지금의 학교를 대체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일까? 코로나 위기를 통해 학교를 더 진화시킬 방법은 없을까?
초상화를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사람이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사진기가 나오면서 그 직업은 사라졌다. 대신 화가는 사물을 똑같이 그려 내는 능력 대신 자신의 머릿속 생각을 그리는 것으로 작업의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이후에 동영상
수업이 보편화가 되면 처음에는 기존의 시공간적 제약으로 만들어지는 권위가 사라지는 데 집착할 것이다. 교사들이 불필요하게 되는 게아닌가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아 선생님의 역할이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다. 이제 화가는 어느 누구도 사진기와 경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선생님은 온라인 수업 동영상 속 일타강사와경쟁하면 안 된다. 지식 전달의 기능은 일타강사나 유튜브상의 각종동영상 자료로 해결 가능하다. 하지만 교육은 지식 전달이 전부가 아니다. 선생님은 지식 전달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해답은 ‘대화‘에 있다. 교육이라는 것이 선생님에서 학생으로 일방향으로 전수되는 흐름이 아닌, 학생과 대화를 통해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서 학생들 내면의것들을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 될 것이다. 학생들 각자는 깊은 우물과도 같다. 선생님과의 대화는 두레박이다. 학생들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잠재력을 긴 줄에 매달린 두레박으로 길어 내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21세기 선생님들은 20세기 화가들이 했던 고민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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