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마종기는 눈 내리는 아침에 미사를 지낸 감동을 시 「눈 오는 날의 미사에서 노래합니다. 두 번째 연에서 듣게 되는 시인의 고백이 마음을 깨끗하고 따뜻하게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형의 물이 / 오래 비어 있던 나를 채운다 / 사방에 에워싸는 하느님의 체온, / 땅에까지 내려오는 겸손한 무너짐. / 눈 내리는 아침은 희고 따뜻하다.

바로 나는 잠자고 있으나, 나의 심장은 깨어 있다>입니다.
유난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이 곡과 클라우스 헴메를레 주교의 성탄 묵상은 참 잘 어울립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네 / 말씀이 심장이 되셨네 / 하느님께서 심장을 가지셨네. / 하느님의 심장이 뛰시네 / 수백만의 인간의 심장의 맥박 안에서 / (…) /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네 / 사람의 심장 안에 살고 계신 것이 누구이신지 / 우리의 심장은 채워지지 않는 몽상이 아니라네 / 우리의 심장은 출구없는 절망으로 내몰리지 않는다네 / 우리의 심장은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는다네 / 아니, 우리의심장은 옳다네 /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심장을 취하셨으니까.

미쓰하라 유리의「하얀 길이라는 짧은 시 한 편이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오랫동안 헤매이다 마침내 바른길 찾아오면 / 길은 아무말 하지 않아 칭찬도 나무람도 / 짐 될까 저어 ‘돌아왔니‘
한마디조차 / 다만 지금부터 걸어갈 길 오롯이 하얗게 가리킬 뿐 / 걸어온 길보담 / 지금부터 걸어갈 길이 / 늘 중요하니까.

베토벤은 이 부제와 함께 마지막 악장 도입부의 악보 여백에 "그래야 하는가Muss es sein?"라고 묻고, 이어서 "그래야 한다그래야 한다Es muss sein, Es muss sein!"라고 스스로 답하는메모를 적어두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체코의 작가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현악 사중주 제16번)에 얽힌 이러한 일화를 실존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베토벤이 인간의 삶을 진정가치 있게 만드는 것으로 무거움과 필연성을 꼽았다고 말합니다. 베토벤은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가 마치 하늘을 지고있는 것처럼 인간을 각기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존재로 보았다는 것이지요.

밀란 쿤데라 역시 이런 정황을 모르지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오히려 일상의 작은 일화가 어느 사이엔가 심오하고 실존적이고 존재론적인 사건이 되어버린 것 자체가 소설의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쿤데라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존재하는 ‘아이러니‘야말로 인간 존재와 인간의 삶을 관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베토벤의 이 일화는 이러한 철학적 인식을 위한 탁월한 예입니다.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든하지 않든, 베토벤이 자신의 마지막 걸작과 함께 남긴 수수께끼 같은 메모는 음악사가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진지한 삶의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솔닛은 ‘걷기‘를 주제로 삼는 것이 누구나 하는 일상적 행위에서 특수한 의미‘를 보는 법을 배우는 좋은 예라고 합니다.
역사와 문화라는 큰 맥락에서 ‘걷기‘를 조망하는 것이며, 그러면서도 각 개인의 살아 있는 흔적을 감지하려 애쓰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걸어가면서 생겨난 수많은 것들, 즉 골목과통행로 같은 장소, 순례와 산책 같은 활동, 이런 과정에서 자라난 문학적 상상력과 이야기, 그것들을 적어둔 책들이 걷기의 역사를 만듭니다.

이 우아하고 지적인 책은 ‘걷기‘라는 하나의 예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매일 경험하고 수행하는 일상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다 깊이 통찰하게 합니다. 이는 사실 오늘날처럼 각 개인의 중요성과 대체 불가능함이 가차 없이 부정되는 시대에 굳건히 지켜져야 할 사상입니다.

솔닛은 순례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를 찾으려 애쓴다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순례라는 행동의 근본적인 목적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
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순례를 이끄는 원동력이 영혼의 가장내밀한 갈망과 그 갈망을 담는 나의 몸에 있는 것이지요.

세르토는 머리말에서 이 책을 ‘일상의 영웅들인 모든 익명의 사람들에게 헌정한다고 밝힙니다. 대단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되풀이하며 수행하는 것은 사실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흔적을 세상 안에 새기는 것이며, 세상을 만들어 가는 방법 인 것입니다.

세르토는 이러한 일상의 실천 중에서 도시를 걷는 행위를 각별히 주목합니다. 일상의 영웅들은 늘 움직이고 걸으며 죽어 있는 공간에매일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지요.

시간은 우리 앞에 언제나 열려 있는 지평의 표현으로서충만함과 관련되지만, 개별적인 순간들은 제한된 공간속에서 살아가는 한계의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개별적인 매 순간을 살아가는 동시에, 우리의 최종 목적인 낙원의 미래로 이끌어주는 더 위대하고 밝은 지평을 살아갑니다. 여기에서 국가 건설의 진전을 위한 첫째 원칙이나옵니다. 곧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는 원칙입니다.
(222 항)

이 원칙은 눈앞의 즉각적인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천천히 확실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는 어렵고 적대적인 상황을 이겨내고, 현실의 힘이 강요하는 계획의 변경을 참을성 있게 견뎌내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우리가 충만함과 한계 사이의 긴장을 받아들이고 시간을 우선시하도록 초대합니다. 우리가 이따금 사회 정치 활동에서 보는 잘못들 가운데 하나는 공간과을 시간과 진전보다 더 중시하는 것입니다. 공간을 우선시한다는 것은 자신을 내세우는 권력의 공간들을 독점하고 모든 것을 현재에 가두어두려고 하는 무모한 시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과정을 고착시켜 진전을 가로막습니다. 시간을 우선시한다는 것은 공간들을 장악하기보다.
는 진전의 과정들을 시작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의미입니다. 시간은 공간을 지배하고 밝혀주며, 그것들이 퇴보하지 않고 계속해 확장되는 연결 고리로 만들어줍니다. (223항)

교황의 통찰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작은 이들의 분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우쳐줍니다. 그리고 ‘시간‘ 이라는 지평 속에서 각자의 노력이 모여들고, ‘공간‘으로 표상되는 역사와 체제라는 거대한 벽도 인간다움을 향한 연대의 힘은 이겨내지못하리라는 희망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르토 신부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은 리베카 솔닛이 ‘걷기의인문학‘을 꿈꾸며 우리에게 전하는 호소도 결국 이러한 연대에의 촉구일 것입니다. ‘걷기‘라는 일상적인 행위이자 실천에주목할 때, 역사와 공간이 이루는 거대한 세계가 사실은 인간에게 또 각각의 사람들에게 귀속됨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는것이지요. 그리고 각 개인이 나름의 길을 걸어가고 있고 이러한 생의 발걸음들이 만나 쌓여간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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