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음악서재, C# - 혼돈의 시대, 사색이 음악을 만나 삶을 어루만지다
최대환 지음 / 책밥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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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간의 조건‘ 아래서 살아갑니다. ‘인간의 조건‘은 인간의유한함이자 유약함이며 이런 인간 존재를 살피고 인간의 삶을 해석하는 데 종교와 인문학과 예술은 열쇠와도 같습니다. 인간에 대해 설득력 있게 말하고자 한다면 인간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헤아리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필연적 법칙, 이성적 계획, 주체적 의지에 의해서만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기치 못했던 사건이, 시대의 흐름이, 타인과의 만남이 우리의 인생을알지 못했고 원치 않았던 자리로 이끌어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렇게 생각지 못한 새로운 현실이 삶에 나타날 때, 이를 부정하는 것은 부질없습니다. 그 현실이 마음에 드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것이든, 우리는 거기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슬픈 일에 연주되는 경우가 많은이유는 첼로라는 악기의 어둡고 서글픈 음색과 더불어 이 곡이외롭게 하나의 악기만 요구한다는 사실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첼로는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닮은 악기라서 암울한소리만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장조로 쓰인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경쾌하고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는 태평한 태도와 황홀한 유희 역시 어느 정도 들어가 있다. 그 뿌리는 춤이다.
P.19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서》

오히려 나 자신의 조화로운 내면이 행복한 삶을해 더 근본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측면입니다. 내면의 조화를 만들어갈 줄 모르는 사람이 과연 다른 사람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족들이나 동료들과 맺는 관계가 조화롭게 흘러갈 때야비로소 내 안에 조화가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 역시 정당합니다. 우리는 조화로운 내면과 조화로운 관계는 서로 ‘순환적‘ 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논리학이라면 이를 순환논법의 오류‘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사람이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사에· 서는 이 두 가지가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와 서로 엉켜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를 칼로 자르듯 구분해 선후나 인과관계를 따질 것이 아니라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두 측면을 함께 아우르면서 가만히 바라보며 이해하려 할 때 비로소 조화로운 인생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인간사에서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우리를 자주 순환논법의 상황에처하게 합니다.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알기 어려운 이런 난제들을 ‘아포리아‘라고 합니다. ‘난제‘를 뜻하는 아포리아는 길이 없음 (a-poria)라는 고대 그리스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아포리아‘에서 시작하는 사람은 삶의 복잡성을 과소평가하지않습니다. 자신 안에 자리한 편향과 맹목성을 끊임없이 주시합니다.
사려와 신중을 잃지 않으려 애씁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진정 ‘아포리아‘에서 시작하는 사람은 순환적으로 보이는 인생의 큰 문제를 만날 때 피하지 않고 정면대결을 감행합니다. 참된 철학자들은 ‘큰 문제‘ 와 씨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입니다.

사회적 환경과 타인들에게서 오는 외적인 요구들을 회피하거나수동적으로 끌려다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동시에 눈앞의 일들에만 빠져서 소진되기 전에 자기 자신 안에 조화로운 내면이 자리하도록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자기 배려를 위한 조화의 영감‘이 필요합니다.
나의 일상에 ‘조화의 영감‘이 때때로 찾아오는지 가만히 살펴봅니다. 자연이 지닌 아름다움, 책들에서 얻는 지혜, 격조 있고 감동적인 예술, 사람들의 아름다운 선행의 마음, 무엇보다 가족과 벗들의배려와 사랑이 우리 안에 조화가 피어나게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지는 이런 질문으로 요약될지 모릅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조화의 영감" 이 되고 있는가?‘

에라스뮈스는 ‘사계절의 사나이(Omnium horarumhomo)‘라는 이전부터 쓰이던 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진지하면서 동시에 재미있는 사람이면서 다른 이들이 그와 기꺼이 어울려 지내길 바라는 사람을 두고 옛사람들은 사계절의 인물이라고 불렀다.

보에티우스는 스스로를 가르치고 위로하기 위해 바다의 은유를 들고 있습니다. 바다는 때로는 잔잔하다가도 폭풍을 받으면 분노한 듯 말할 수 없이 요동하는데, 인생 역시 잠시 평탄함과 행복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언제라도 뒤엎어질 수 있고, 사라져갈 수 있는것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참된 평온함과 행복은 오직신이 보증하는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에 있는 ‘항구‘에서만 찾을 수있는 것이고, 인생은 그때까지는 위태로운 항해이기에 철학을 통해도야되어야 우리의 마음이 ‘잔잔한 바다‘가 될 수 있다고 말이지요.

종교적 사고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평온을 향한 갈망을 종교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내 생각에 종교인이라면 평온이나 평화를인간이 추구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준 선물로 여길거야. 자네의 환자들을 고통에 빠진 인간으로 세심하게 살피고,
많은 이들에게 ‘안녕히 주무세요’라는 인사를 할 기회를 더 많이누리게. 이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부러워할, 하늘이 내린 선물을 갖게 되는 거야.
- P158-159 《비트겐슈타인 회상록》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사랑의 자취를 소중하게 돌아보는 한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고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대상은 다양하지만, 우리가 처음 사랑을 제대로 배우는 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지니는 것은, 연인이든, 가족이든, 벗이든, 누군가 어떤 사람‘을 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사랑했고 사랑하는 것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돌아보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합니다. 사랑의 역사를 가진 사람은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믿음을 이어갈 수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사랑 역시 왜곡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사랑을 선사하고,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그 사랑이 향하게 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것이 내가 하는 사랑을 지키고 꽃피우는 길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좋은 삶이었는가는 우리의 사랑이 결정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향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 입니다.

진리의 준엄함을 직시하되 그 진리를 따르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잘 이해하고 그로부터 생기는 슬픔을 그려내는 것이 문학이라고요. 위대한 종교의 가르침들이 알려주듯이 우리는 진리를 사랑하되,
슬픔과 아픔과 약함에 마음을 열 수 있어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은 결벽하고 가혹한 마음이 아닙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약한 존재가 바로 나이고, 그대이고, 그녀이며, 그입니다. 문학이 그러한 인간 존재의 슬픔을 이해하고 위로하듯 우리의 마음도 스스로를 품어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과 연민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용서와 겸손에서 힘을 얻고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것을 감행해야 합니다. 진리를 향하고 자신 안의 깊은 어둠을 직시하는 것,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에 속합니다.

사실 힘든 시기엔 너나할 것 없이 자신만을 돌보게 되기 쉽습니다.그러나 그것이 사실은 불행의 더 큰 이유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말없이 깨우쳐주며 그러한 불행의 길 대신에 어려운 시기에도 사람됨을 지켜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그 시대는 그래도 희망이 남아있다 하겠지요. 자비로운 이들만이 세상의 희망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려는 사람들이남아있다면 그 시대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 역시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만큼 인생에서 위대한 일은 없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세상의 허명에서 마음을 돌릴 줄 아는 ‘회심’을 필요로 합니다. 자비는 천성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우리에게 불어넣는 헛된 욕심 들에서 마음을 지키려는 끈기 있는 투쟁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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