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믿음의 내용과 교리를 논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렇다 보니 오죽하면 일련의 개념만 알면 기독교 신앙을 터득했다고들 여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신앙의 참본질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삶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신앙은 참이 된다. 예컨대 신자답게 살려면 다른 사람 비판하기를 더디 하고 자기 눈에 있는 들보부터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두려움과 불안에 찌들어 있을 게 아니라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남을 대접할 길을 찾아야 한다. 내일을 염려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범죄로 이어지기 전에 분노를 꺾어야 한다. 억울한일을 당했을 때 상대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교리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에게 새롭게 살아갈능력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인데, 그리스도인이 그 사실을이해하려면 먼저 믿음의 내용과 씨름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지식적 개념은 문에 불과하다. 개념이 의미를 발하려면 우리가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순전한 기독교》 4장을 읽다가 퍼뜩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 지금도 기억난다. 루이스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이 될 때 우리는 우리를 온전하게 빚으시려는 하느님의 작업에 합류한 것이며, 이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을 거부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미진하여 언제라도 우리를 포기하실거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 깨달음은 젊은 날의 내 사고에 천지개벽을 일으켰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단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기나긴 여정이며, 나와가장 가깝기에 내 부족한 모습에 가장 큰 영향을 입을 사람들이 곧 이 정화 과정에서 하나님이 주로 쓰실 교실임을 일깨워 주었다.
전광석화 같은 깨달음은 식탐에 대한 스크루테이프의노련한 속셈을 읽을 때도 찾아왔다. 그때까지 내가 생각하던 식탐이란 안 그래도 비만이다 싶을 만큼 살찐 사람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게걸스레 먹어 치운다는 뜻이었다. 즉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루이스가 식탐의 사례로 제시한 어떤 어머니는 "잘구워진 빵 한 조각"에 집착하며 욕심을 부린다. 어쩌면 나도 생각만큼 "식탐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루이스의 통찰이 아주 깊고 풍부하고 유익해 보일 때는 바로 이런 순간이다. 기독교 신앙을 실천한다는 의미의 핵심을 짚어 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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