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무술림 테러 사건으로 인해 테러는 대부분 무슬림의 소행이라는 쪽으로 대중의 의견은 너무 빨리 움직인다. 하지만 이는 테러리즘의 정의 자체가 모호하고 논란이 많기 때문에 쉽게 판단할 수없는 주장이다. 그보다 훨씬 심각한 정신적 오류가 있다. 테러는 대부분 무슬림의 소행이라는 생각에서 도출된 무슬림 대부분이 테러리스트, 혹은 잠재적 테러리스트라는 결론은 명백한 오류다. 무슬람의 테러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얻는 유용한 방법 한가지는 지역의 무슬림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정보를 공유하는것이다.

그렇다면 ‘서양‘이란 무엇인가? 호주와 폴란드를 포함하고, 서양에 속한 몇몇 나라보다 더 서쪽에 있는 이집트와 모로코 같은 나라는 제외하기 때문에 지리적 개념은 아니다. 베이나트가 지적했듯이일본, 대한민국, 인도는 포함되지 않으므로 정치적·경제적 용어 또한 아니다. ‘서양‘은 기본적으로 종교와 인종을 공유하는 집단이다.
(약간의 유대교인이 포함된) 기독교인들이자 (라틴 아메리카는 제외되었으므로) 백인들을 뜻한다.

정치적으로 살펴보면 트럼프의 연설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슬람 세계는 내부에서 전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집단이나 가장 적대적인 조직도 유럽의 최약체 나라조차 무력으로 위협할 힘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트럼프의 연설은 정치적 분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쪽‘과 ‘동쪽‘에 대한,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쪽‘에서 온 이민자들대한 두려움을 부추기기 위한 것이었다. 트럼프의 연설에 대해 베이나트가 내린 결론에 나도 동의한다. 트럼프의 관점으로 보면 미국은 본질적으로 서양 국가, 즉 백인과 기독교의 (잘해야 유대 기독교의)나라다. 미국에서 백인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진정한 미국인이 아니라 가면을 쓴 위협적인 존재임을 뜻한다

사랑은 타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최소한의 선을 행하고 또변할 수 있는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희망은 사랑에의해 유지되고, 타인에게서 최악보다 최선을 기대하는 영혼의 관대함이 사랑을 지탱한다. 행동과 행동하는 사람을분리하는 일이 이 사랑을 돕는다. 악한 행동을 비난할 수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행동 이상으로 성장과 변화가 가능한 존재다.
정치에서의 희망은 혐오를 멈추는 것부터 시작된다. 물론말하기는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상대의 온전한 인간성을상상하지 못하고 그들의 행동과 그 행동 뒤의 인간성을 분리해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를 악으로 규정하는 한 밝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고 협력과 인류애를 가능하게할 사랑도 갖지 못한다.
우리는 공공의 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실 경험이 없는내성적이고 허약한 철학자가 아닌 세계를 위해 일어설 수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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