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초반, 미국 언론이 케이팝의 세계적인 성공과 미국 내에서의 관심을 보도하며 처음으로 사용한 표현이 바로 ‘팩토리 아이돌 factory idol‘ 이었다. 공장형 아이돌, 즉 비인간적으로 찍어낸 듯 비슷비슷한 가수들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들어 있다. 물론 이 같은 평가엔 미국인들 특유의 아시아인에대한 편견 혹은 케이팝의 부상에 대한 막연한 경계심이 반영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미국 역사에서 아시아인은 늘몇 가지 고정관념으로 묘사되었다. 가령 성적 매력이 없는못생긴 남성 같은 것이 그러하다. 케이팝 아이돌의 잘생긴외모와 강렬한 춤사위는 분명히 그 편견을 깨는 데 일조하고있지만, 동시에 이는 개성이 없고 비슷비슷한,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편견을 확인하거나 혹은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BTS는 과연 이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물론 그들역시 케이팝 기획사가 기획하고 훈련한 아이돌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 점에서 그들 역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고 아직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이 한계를 일정 부분 극복해냈다. BTS는 굳이 영어로 제작하거나 번안한 음반을 녹음하지 않았다. 또한 앞서 언급한 케이팝 현지화의 필수적요소인 외국 작곡가 혹은 프로듀서와의 초국적 협업 그리고현대성의 상징적 존재이자 미국 대중음악 신과의 ‘중재자‘로 서의 재미교포 멤버 혹은 현지화의 필수 요소로 활용되어온 외국인 멤버 등을 통해 미국을 공략하지도 않았다. 정확히말하자면, 애초에 이들에겐 미국 진출‘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전략의 부재가 그들의 음악적 차별성을 입증하고 예상치 못한 성공으로 이어진 밑바탕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이렇듯 최소화된(혹은 부재한) 전략으로도 폐쇄적인 미국 시장을 매혹시키고, 나아가 전인미답의 기록을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은 케이팝이면서 탈-케이팝적인 정체성, 특히 진정성을 내세운 음악적 태도 및내러티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BTS 역시 여느 아이돌 그룹과 유사한 트레이닝 시스템을 거치며 음악성을 담금질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모든 멤버가 일정한 음악적 창작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픽업이 되었거나 커리어초반부터 뮤지션의 자세로 음악 작업에 참여했다는 점에서다른 그룹들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이 바탕 위에 케이팝의 전통적 강점인 트렌디한 음악과 화려한 퍼포먼스가결합함으로써 시너지가 훨씬 커졌다. 거기에 글로벌 트렌드이자 시대정신이며 미국 대중들에게 가장 환영받는 음악 장르인 ‘힙합‘의 언어와 태도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거칠지만 늘 솔직하게 표현했다. 이러한 모습이 아이돌 문화에 배타적이고 아티스트적 진정성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미국 미디어와 평단 그리고 청중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것을 단지 운이 좋았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지난 수년간 내가 미국 현지에서 만나본 ‘아미‘들은 BTS의음악이 "다르다"는 데 입을 모은다. 힙합을 포함한 그들의 음악과도 그리고 그들이 지금껏 접해온 케이팝과도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 ‘다름‘의 핵심은 메시지의 보편성과 건강함이다. BTS는 그간 아이돌 음악에서 기피되던 청춘과 성장의 내러티브를 콘셉트이자 정체성으로 적극적으로 껴안아 그것을 심오한 메시지와 세련된 음악 안에 녹인 사실상 유일한 케이팝 그룹이다. 학교 3부작‘에 이은 ‘화양연화‘ 연작을 통해 구체화하기시작한 이들의 이야기는 추상적인 콘셉트와 허구적인 세계관이 주류를 이룬 기존의 케이팝 아이돌 음악과 다르며, 때로는 지나친 자기 증명과 소위 스웨그‘라 불리는 마초적 허세의 내러티브에 탐닉한 미국의 주류 힙합과도 달랐다. ‘쩔어‘나 ‘불타오르네‘가 보여주는 들끓는 에너지, ‘사이퍼‘ 시리즈와 Mic Drop‘을 통해 드러나는 젊은 뮤지션들의 당찬 면모, ‘고민보다 Go‘ 등에서 보이는 세태 비판, 무엇보다Epilogue: Young Forever‘와 ‘봄날‘ 등에 담긴 상처받기쉬운 청춘의 좌절과 슬픔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희망적인이야기는 케이팝의 가장 큰 약점이던 메시지의 진정성과 태도의 한계를 극복해낸 원동력이 되었다. 이 다양하고 진솔하며 보편적인 메시지는 트레이닝과 현지화 전략만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내러티브의 진정성이 중심이 된 BTS의 행보는 그들의 평소모습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한 팬들과의 소통에서도 고스란히드러난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 소속사가 여러 가지 위험부담을 이유로 아티스트들의 SNS 활동을 자제시키거나 철저히 기획된 모습만 보여주던 시절에도, 그들은 부족한 자본을혁명적인 뉴 미디어로 만회하며 팬들과의 스킨십을 꾸준히쌓아왔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일관성 있는 태도와 진심이담긴 진정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SNS에서 보여주는 모습과그들의 내러티브는 정확히 일치했고, 그 어느 곳에서도 어색한 ‘맞춤형‘ 제스처가 없었다. 말과 행동 그리고 음악이 일체감을 이룬...
미국과 일본의 아이돌 문화에서 ‘성장‘이란 콘셉트가 대부분 보여주기식의 피상적이고 가상적인 영역으로 제한되어 인공적인 느낌을 주는 데 반해, BTS는 그 진정성의 범주를 음악과 삶의 모든 곳으로 확대하면서팬과 아티스트가 ‘하나 되는 극도의 일체감과 동지의식을부여한다. 이것은 팬을 대상화했던 대중음악에 있어서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인 것이다.
2018년 10월 중순, BTS 멤버 지민의 사진 한 장이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사진 속에서 지민이 입은 티셔츠에는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장면과 2차 세계대전 종전,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축하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Patriotism(애국)‘, ‘Our History(우리의 역사)‘, ‘Liberation(광복)‘, ‘Korea(한국)‘라는 영어 단어가 적혀 있었다. 이로 인해 11월 8일, 일본 아사히 TV는 예정되어 있던BTS의 뮤직 스테이션> 출연을 취소하고, 4일 후 미국 유대인 인권단체 시몬 비젠탈 센터 Simon Wiesenthal Center, SWC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와 BTS가 과거를 조롱한다며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11월 13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입장문을 발표했음에도시몬 비젠탈 센터가 이에 대해 발표한 성명과 국제 언론이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이에 좌절감을 느낀 30여 명의 아미가 논란과 사건을 조망하고 되짚어보기 위해, 논문 수준의 ‘백서(본래 영국 정부의 공식보고서 명칭인데,정부가 정치, 외교, 경제 따위의 각 분야에 대한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해 그내용을 국민에게 알릴 때 작성하는 보고서를 의미한다)‘를 발간했다. 여기엔 해당 사건의 개요와 잘못된 언론 보도 및 허위 정보 조사, 이를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배경,팬덤의 반응, J-ARMY 팀 멤버의 입장문 등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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