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자기 안에 자리를 잡고 있던 순종과 금기의 명령들, 오랫동안 그녀에게 무능력과 불가능을 주입하던 내면의 목소리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느꼈다. 장애라는 것이 일상에서 겪는 불가능과 그때 일어나는 포기의 정서라면, 밤하늘의 별은 그녀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단번에뒤집게 했다. 한마디로, 그녀에게 불가능은 가능이 되었고 무능력은 능력이 되었다. 별을 본 후 그녀는 자립생활을 위해 곧바로 기숙사를 나와 버렸다. 이전에는 전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밤하늘의 별이 그녀에게 준 것은 천체에 관한 지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일깨움, 각성, 용기였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야말로 철학에 대한 참 좋은 정의라고 생각한다. 철학은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단 하나의 지식이나 정보도 달리 보게 만드는 일깨움이라는 것 말이다. 나는 철학이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불가능과 무능력, 궁핍과빈곤을 양산하고 규정하는 모든 조건에 맞서 분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철학은 다르게 느끼는 것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며 결국 다르게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가난한 이들이 껴안을 수 있는철학이며, 가난한 이들이 철학자에게 선사하는 철학에 대한 좋은정의라고 생각한다.

솔닛은 그가 본 공동체들을 ‘낙원‘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떠올리는 낙원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대개 낙원이란, 기껏해야 ‘영원한 휴양지‘ 이고, 우리가 무엇인가를더 만들어 갈 필요가 없는 장소‘이다. 그러나 솔닛따르면, "지옥에 세워지는 낙원은 늘 문제와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서 나타난다.
지옥에서 세워지는 낙원은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이 낙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힘과 창조성을 쏟아붓고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과 얽혀 있는 순간에도 뭔가를 창조할 만큼 자유로워진다. 지옥 속에서 세워지는 낙원들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있어줌. 이 말에서는 ‘있음‘과 ‘춤‘, 다시 말해 ‘존재‘와 ‘선물‘ 이일치한다. 독일어에서는 무엇이 있다‘는 말을 ‘Es gibt ~‘라고 한다. 여기서 ‘gibt‘라는 동사는 ‘주다‘는 뜻의 ‘geben’에서 온 말이다. 그러니 ‘있음‘이 곧 줌이다. 존재가 선물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존재‘가 ‘선물‘이라는 말을 고상한 미사여구 정도로 받아들이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힘들고 힘든 시절, 바로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젠 지쳤다‘며 운명의 줄을 놓아버리고 있다. 신문을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뭔가 줄 수 있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그래서 떠올린 말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가진 원초적 선물이 필요하다. 곁에 있어주자. 나를 너에게 선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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