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카뮈의 말대로 인간은 경멸할 것보다 감탄할 것이 훨씬 많은 존재다.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삶에 직면한 인간은 인간과의 상호작용이 깨어진 세계에서의 부조리한 현실을 생명의 현실로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요, 존재에의 기쁨을 선사하는 희망을 실현하는 존재다. 희망을 지닌 인간은 창조적 능력으로 삶의 의미를 성찰할 수 있으며,
‘되어가는 존재‘로서의 ‘나‘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마르셀(G. Marcel)에 따르면 희망은 "우리의 영혼을 만드는 옷감이며1), 나의 존재가 무의미한 절망으로 끝날 수 없다는존재의 요구를 표현하는 의지와 관련된 말이다. 이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나의 존재가 다시 생기를 찾고 생명으로 전환하는 창조적인 내적 활동을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가 빚은 혼란과 고통을 수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존재에의 힘인 희망이 있는 한, 우리는 삶의 모순과 역설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스스로 책임지고, 자신의일상을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다.

방역의 문제와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만 난무할뿐 정작 사망자와 그 가족들의 슬픔과 관련된 공감의 이야기는 빠져 있다. 개인의 죽음을 사적 영역으로만 다루고있는 한국 사회에서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들을 애도하는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코로나 희생자들은 하루 사망자 수치에 더해지는 숫자로만 이해될 뿐, 그들이 병상에서느꼈을 고립감과 외로움에 대한 공감은 없어 보인다. 미국뉴저지 주지사가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반기(半旗)‘를 달도록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코로나 사망자들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한 작은 방식입니다"라고 말한기사를 보면서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했다. 이탈리아에서도 전염병의 많은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해 전국 시청에서조기를 내걸고 1분간 묵념을 하거나 지역 신문에 코로나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름을 싣고 그들을 애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한국 사회도 코로나로 사망한 감염자들을 배제하고 낙인찍고 타자화하기보다는 인간적인 고통과 아픔이 사회적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애도를 통해서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건강한 방식으로 시작할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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