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우리가 마음껏 물놀이를 즐기려는 바다, 파도와 결혼하여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려는 바다를 축복하는 계절이다. 《악의 꽃》의 한 시는 바다를 이렇게 예찬한다.
자유로운 인간이여, 그대는 언제나 바다를 사랑하리! 바다는 그대의 거울, 그대는 끝없이 펼쳐지는 물결 속 그대의 영혼을 바라본다. 그대의 정신도 바다 못지않게 씁쓸한 심연이다.
그대는 그대의 이미지 한가운데로 잠기길 좋아한다. 그대는 그것을 두 눈과 팔로 포옹하고, 그대의 마음은 야생의 길들일 수 없는 그 탄식 소리에 이따금 저 자신의 소란을 잊는다.
보들레르는 자신의 시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보기에 그의 시대는 19세기의 "유일사상"인 진보에 대한 천진한 믿음, 기술·사회·도덕·예술 등 온갖 형태의진보론이 주된 특징이었다.
크게 유행하는 또 하나의 오류가 있는데, 그것을 나는 지옥처럼 멀리하고 싶다. -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진보라는관념이다. ‘자연‘이나 ‘신성‘의 보증 없이 특허를 받은 오늘날의 철학주의가 만들어낸 이 어두운 전조등, 이 현대식 전조등이 인식의 모든 대상에 어둠을 투사하고 있다. 자유가 증발하고, 처벌이 사라진다. 역사를 밝은 눈으로 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이 엉터리 전조등을 꺼버려야 한다. 현대의 교만으로 부패한 이 땅에 활짝 핀 이 그로테스크한 관념은 사람들모두에게 각자의 의무를 저버리게 하고, 모든 영혼을 책임감으로부터 해방하고, 의지를 미에 대한 사랑이 부과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게 했다. 이 딱한 광기가 오랫동안 지속한다면졸아든 인종들은 숙명의 베개를 베고서 망령 난 몰락의 잠에빠지게 될 것이다. 이 자만은 벌써 너무나 가시적인 데카당스를 진단하게 해준다. (II, 580)
단골 작은 카페에서 매일 신문을 읽는 모든 프랑스 사람에게진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물어보라. 그것은 로마인 들이 알지 못했던 기적들, 증기·전기·가스등이라고, 그리고그런 발견들은 고대인에 대한 우리 현대인의 우월성을 충분히 증언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 불행한 뇌들 속에 그만큼어둠이 가득하고, 물질적 차원과 정신적 차원의 사물들이 그만큼 망측하게 혼동되어 있어서가 아닌가! 불쌍한 인간은 산업적인 동물적 폭정의 철학자들에 의해 너무나 미국화되어, 물질적 세계와 도덕적 세계의 현상들, 자연과 초자연의 현상들을 특징 짓는 그 차이에 대한 개념마저 상실해버렸다.
진보 개념을 도덕의 영역에 적용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인간은 언제나 같은 인간, 다시 말해자연적인 인간, 즉 가증스러운 인간이기 때문이다. 보들레르는 《벌거벗은 내 마음>>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진정한 문명의 이론, 그것은 가스등이나, 증기기관이나, 영매의 교령 원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죄의 흔적을 줄이는 데 있다. (1, 697)
보들레르를 특히 분노케 한 것은 바로 예술에 적용된 진보 도그마다. 마치 현대 예술이 과거 예술을 없애버리고, 모든 가치를 빼내 버리고, 그래서 과거 예술이 더는 예술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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