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의 아카이아인들이 함선을 타고
아늑한 고향 땅으로 다시 떠나가거든,
그때는 저 방벽을 산산이 부수어 바닷속으로 쏟아버리고
넓은 해안을 다시 모래로 덮어
저들 군대의 긴 방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라.
《일리아스》, 7편, 459~463

이 시구는 식물에 뒤덮여버린 키클로페스족 사원의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앙코르 유적지를, 잉카문명의 도시들을 생각한다. 우리는 포세이돈이 물에빠뜨린 아카이아 땅의 제방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결국 동일한 운명이다. 영광스러운 건축물들은 바람에휩쓸리고 가시덤불이나 모래에 뒤덮여 사라진다. 다시말해 시간의 공격에 쓸려간다.
이를모든 것은 흘러간다. 특히 인간은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모든 포위자는 포위당하는 자가 될 수 있다. 성벽의 어느 쪽에 서느냐에 목숨이 달려 있다.

제우스는 선택을 거듭 바꾸고, 기분과 이해관계에따라 이쪽 편을 들었다가 저쪽 편을 들곤 한다. 혼란가운데 피어오르는 피 냄새 위로 호사스러운 야영지의이미지가 불행을 굽어보고 있어, 아름다움이 항상 죽음 위를 떠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들은 사기충천하여 밤을 지내려고
싸움터에 자리 잡았고, 수많은 화롯불이 타올랐다.
미풍조차 숨죽인 먼 하늘에 밝은 달을 에워싸고
뭇 별들이 또렷이 반짝이듯이,
산봉우리, 꽃, 골짜기가 눈부시게 빛나고,
하늘에서 영기靈氣가 무한히 부서져 내리고
별빛이 영롱하니 목자의 마음도 벅차오른다.
크산토스의 함선들과 물결 사이로
도시 아래쪽에서도 트로이인들의 화롯불이 타올랐다.
《일리아스》, 8편, 55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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