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여기까지다. 최소한 배고픔과 관련해 그의 고통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여기까지다. 한 공기의 밥으로 그가행복을 느낀다고 해서 두 공기의 밥, 세 공기의 밥, 나아가 한 가마의 밥을 그에게 먹여서는 안 된다. 한 공기를 넘어서는 순간, 그는배고픔에 비견할 만한 새로운 고통에 빠져들고 마니까. 사랑은 ‘한공기의 밥‘과 같은 것이다.
한 공기의 사랑이다. 그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한 공기의 사랑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한 공기를 넘어서는 모든 사랑은 "정말사랑했다!" 라는 나의 정신 승리는 가능하게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온갖 고통을 가하는 끔찍한 일이다. 심지어 나를 사랑하면 세 공기든 네 공기는 한 가마든 먹어야 한다고 그를 압박한다. 세 공기, 네 공기의 밥을 지은 자신의 수고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당신을 위한 나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말아줘. 그러면 나는 정말 슬플 거야." 어느새 그의 배고픔과 포만감보다 나의 수고가 핵심이 되고 만다. 한 공기를 넘어서는 사랑은 이제 사랑의 궤도를 이탈해 공회전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애지중지(愛之重之)하지않게 되니까. 애지중지하는 마음은 그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
한마디로 그를 내 뜻대로 부리지 않겠다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