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복‘은 아비가 이러하더라도, 형이저러하더라도, 묵묵히 숫돌 같은 세월을 보내며 자기 삶을 지켜나갔습니다. 그런 한복‘이가 내놓은 "나는 여기 살 기다" 라는말은, 그래서 자기 삶의 확신이자 자기 존엄의 증명에 다름 아닙니다.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여기 산다고 말하는 인간, 그리고 어디든찾아가서 여기 인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흑인 음악가. 그들이 보여주는 존엄한 인간의 모습에 지금의 옹색한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그리고나는 어떤 나이고 싶은가. 한복‘의 말, "나는 여기 살 기다"라는 저 말을 나는 어디에서 외칠 수 있을까요.

사실, 이전까지는 나 자신이 중심이었습니다. 나를 기준으로삼아, 가깝고 먼 것을 일렬로 나란히 세워두고 살펴봤으니까요.
그러나 노안이 왔다는 이유로, 세상과 나의 관계가 변했습니다.
내게 가깝고 멀다는 거리 감각이야 여전했지만, 더 이상 내 눈을기준점으로 삼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내게 가까운 것이 흐릿해 보이고 어중간한 것들이 또렷해 보이는 상황이 마구잡이로벌어졌으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노화란, 나이 들어 세상과 다시 관계 맺으라는 신의 명령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이 듦이 자연의 섭리라면, 그것은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멀리 바라보라는 그런 도리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싶습니다. 물론 그 이치가 노인에게만필요한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자기 범주를 넘어서 자기 시야를세계로 확장시키는 일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행복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들을 살펴봅니다. 그 가운데 버려야 하는 것,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으로 맨 먼저 손꼽는 것이 ‘자기 집착입니다. 그의 설명을 대강 옮겨보자면 이러합니다. "자살할 생각을 품고 살던 내가 삶을 즐기게 된 비결은 무엇보다도 나에대한 집착을 줄였다는 데에 있다. 나의 죄와 어리석음, 결점에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법을 배워나갔다. [장점이든 결점이든] 자기도취는 어느 정도까지는 정상적인 것이고 탓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자기도취는 큰 해악이 된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자신의 자아는 세상에서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그래서 러셀은, 자기 집착과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 이들을 "자기 안에 갇힌 사람"이라 부르며, 자기중심적인 사람에게는 "걱정의 심리학"이라는 공통 구조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나의 걱정과 결점 그리고 나의 만족과 자랑거리 따위의 일에집착하지 말라는 것은 그것들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러셀의 말대로 어느 정도의 자기도취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다만 나로부터 이웃에게로, 세상으로 시야를 돌려 세상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일이 더 중요함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봐라. 니는 펭생을물지게 지고 니 어무니는 죽는 날꺼지 품팔이나 하고, 니 동생들이라고 다를 기이 있을 성싶으나? 좀 펜하게 살잘 것 같으믄 술말고 갈 곳이 따로 없인께. 너거들 겉은 사람들이 세상에는쌓이고 쌓일 만큼 많다. 밥 묵는 사람보다 죽 묵는 사람이 많고뺏는 사람보다 뺏기는 사람이 훨씬 더 많고 그래 니가 조준구 한놈직이서 아배 원수를 갚는다고 머가 해겔되었나? 달라지는 것은 쥐뿔도 없일 기라 그 말이다. 세상이 달라지야 하는 기라, 세상이."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는 건, 눈앞만 바라보지 않는, 자기 집착을 벗어난, 멀리 보는 자의 조망입니다. 때로 높은 산에 올라가아래를 내려다보면 세상만사가 사소하게 느껴집니다. 야~호!
힘을 모아, 큰 소리를 내지르면 그동안의 근심 걱정이 씻겨 내려
가는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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