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소리들은 말합니다. "네가 괜찮은 녀석이란 걸 보여줘. 적어도네 친구보다는 나은 인간이 돼야 하지 않겠어? 성적은 어때? 상위권에 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 분명히 말하지만, 네 힘으로 해낼수 있어. 교우 관계는 어떻지? 꼭 그런 친구들과 사귀어야겠어? 여기 이 트로피들을 좀 봐. 네가 얼마나 훌륭한 선수인지 알 수 있잖아. 약한 꼴 보이지 마, 괜찮아질 거야! 노후 대책은 다 세워놓은 거야? 별 볼일 없다는 게 알려지는 순간, 관심을 거두는 게 인지상정이야. 쓸모없어지면, 그걸로 끝이라고."
사랑하는 아이‘ 라고 불러주시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한, 이런 질문과 조언들은 전혀 해로울 것이 없어 보입니다. 부모, 친구,
스승, 더 나아가 미디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들조차도 대부분 각자의 이해에 충실한 법입니다. 무슨 경고와 충고를 하든지 속내가 있게 마련입니다. 결국 조언이라고 해봐야 한계가 명확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데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일단 무조건적인 사랑의 목소리를 잊어버리고 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 자체로는 별 해가 없는 제안들이 삶을 지배해서먼 지방으로 끌어내기 시작합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시점을 짚어내기가 특별히 어려운 건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누구에게 속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인가,
아니면 세상인가?"하루하루 지내는 모습을 보면 나는 하나님보다는 세상에 속한 인간처럼 보입니다. 누가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해도화가 납니다. 별것 아닌 거절에도 깊이 상심합니다. 의미 없는 칭찬에 화색이 돕니다. 사소한 성공에 흥분합니다. 아주 작은 일들에 들뜨기도 하고 구덩이에 처박히기도 합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그만 나룻배와 같아서 물결이 일렁이는 대로 고스란히 흔들립니다.
균형을 유지하고 자칫 뒤집혀 침몰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깡그리 쏟아붓다 보니 삶 자체가 생존 경쟁처럼 돼버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나 되게 하는 게 세상이라는 착각에서비롯된 불안한 씨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을 향해 쉴 새 없이 "나 사랑해? 정말 사랑하는 거지?" 라고묻는 한, 그 목소리에 휘둘리고 거기에 묶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 한다면 으로 가득 차 있는 까닭입니다. 물론이지. 잘생기고 예쁘다면, 똑똑하다면, 돈이 많다면 사랑하지. 일류 대학교를 나왔다면, 좋은 직장에 다닌다면, 멋진 친구들과 사귄다면.....

하느님은 팔을 거두거나, 축복을 도로 빼앗아가거나, 사랑하는아이‘로 여기는 마음을 거두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들을 억지로 집에 눌러앉히지도 않습니다. 하늘 아버지는 금쪽같은 자자녀들에게 그분의 사랑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집을 나가면 아버지 또한 막심한 고통을 겪을 게 불 보듯 빤하지만 선선히 떠나보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들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선선히 떠나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아들이 자기 삶을 찾아가도록 허락하는것 또한 사랑입니다.

평생 궁금해하던 수수께끼가 이제 풀렸습니다. 내키는 대로 집을나갈 수 있는 건 그만큼 큰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나는 거기서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는 팔을 내민 채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다가 언제라도 자식이 다시 돌아오면 반가이 맞아들이고 그 귓가에 "사랑하는 아이야, 네게 은혜를 베풀어주마"라고 속삭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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