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에 쓴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도덕 서한은 시칠리아의 행정장관이었던 루킬리우스라는 젊은 친구에게 보내는 서한 형식을 띠고있는데, 실제로 주고받은 편지가 아니라 출판을 염두에 두고 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낸 글로, 상대의 반응을 예상하며 마치 대화를주고받는 듯한 문체를 구사한다. 그 가운데 이 책에 실은 편지에서는 특히 학문에 대한 세네카의 스토아적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당시 교양있는 지식인이라면 기본으로 갖춰야 할 학식으로 여겨졌던 자유학문artes liberales에 대한 세네카의 생각은 남다르다. ‘자유‘라는 단어가 들어간다고 해서 자유로운 학문인 것이 아니며, 그것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자유‘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혜와 덕을 추구하는 철학이야말로 진정 자유로운 학문이며, 자유학문은 그 공부를 위한 기초를닦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스토아철학자인 그가 말하는 자유란어떤 부침에도 흔들리지 않고 덕을 추구할 수 있는 정신의 자유를 의미할 것이다. 공부를 하는 목적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글이다.

오디세우스가 헤매며 다닌 지역들이 어디인가?"라고 묻기보다, 차라리 우리 자신이 어느 때든 길을 잃지 않도록노력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가 거친 파도에 시달렸던 바다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사이의 바다인지 아닌지, 혹은 우리가 아는 세상을 벗어난 곳인지(사실 우리가 아는 좁은 범위 안에서는 그렇게 오래 헤매 다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에 관한 강의를 듣고 있을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네. 우리 역시 매일같이 우리를 이리 밀치고 저리 던지는 정신의 폭풍우를 만나며, 오디세우스를 불행으로 몰아 갔던 그 경솔에 끌려다니지않는가. 우리의 눈을 유혹하는 아름다움이나 우리를공격하는 적들은 한 번도 부족한 적이 없으니 말일세.

나를 함정에서 안전하게 보호할 것들은 이미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네. "내일이 결코 나를 속이지 않을거라니요? 무엇이든 나도 모르게 벌어지는 일은 나를속이는 것이지요." 나로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는 안다네. 이로 인한 불안감은 전혀 없으며, 다가올 미래를 그 모습 그대로 가만히 기다리지. 조금이라도 혹독함이 줄어든 미래라면 그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할 작정이네. 내일이나에게 친절하다면 그야말로 일종의 속임수일 테지만,
나는 거기에도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일어날 수 있음을 알고, 언제나 좋은 일만 일어나지는않는다는 것도 아니 말일세. 나는 언제든 좋은 일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듯이 언제든 나쁜 일을 맞이할 준비도 되어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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