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확산으로 밤잠을 설친 사람이라면, 내 생각에 당신은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서양에서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인 암이나 심장 질환도 걱정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인류는 암이나 심장 질환 때문에 죽지는 않았다. 인류 역사의 99.9%에 해당하는 시기 동안 우리 선조들은 기아, 살인, 탈수 그리고 감염증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우리 뇌는 이런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온갖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 말이다.
기아가 생존에 가장 강력한 위협이었기 때문에 우리 뇌는 칼로리를 열망하도록 진화했다. 이 열망은 음식을 발견하는족족 먹어치우게 만들었다. 그러나 돈만 있다면 무한대로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이 열망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왜 전 세계에 2형 당뇨와 과체중이 만연한지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 뇌를 비롯한 우리 몸은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하던 역사를 거치면서 진화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뛰어난면역 체계를 발달시킬 수 있었다. 또한 우리의 행동은 감염을피하도록 발달했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접촉하지 않는것이 중요했으므로 어떤 사람을 보면 우리는 금방 그 사람이아픈지 건강한지를 알아차린다.
또 감염된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려는 본능도 강하다.
어떤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하는지 알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금 코로나 19 위기 속에서 우리는 하루 종일TV, 컴퓨터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쏟아지는 뉴스 보도를 보는걸 멈출 수가 없다. 마치 세계 곳곳에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라는 미디어 태풍이 몰아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 결과많은 사람들이 현재 강력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새로운 기술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술에 적응하는 게아니라 기술이 우리 몸에 맞게 개발돼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우세한데 이는 부정적인 감정이 역사적으로 위협과 연관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위협은 즉각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먹거나 마시거나 자거나 혹은 짝짓기는 나중으로 미룰 수 있어도 위협에 대한 대처는 미룰 수 없다. 이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다. 짐작하건대 우리의선조가 처했던 주변 환경은 분명 기회보다는 위협이 많았을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어쩌면 더 일반적이었을 수 있다는점은 대부분의 언어에 긍정적인 감정어보다 부정적인 감정어가 더 많은 이유일 수도 있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은 대부분의사람이 큰 관심을 보이는 분야이기도 하다. 갈등이나 극적인사건이 없는 영화나 책을 누가 보려고 하겠는가?
부정적인 감정의 주된 원천은 스트레스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간 뇌에서 가장 고도로 발달한 독특한 부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저 진화에 따라 오래되고 원초적인 부분에 의존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스트레스 상황에는 빠르고 강력하게 대처할지 몰라도, 바로 뇌의 ‘생각하는 부분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결국에는 문제를 더 키우게 될 수도 있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리는 싸우거나 달아나게 되고, 결국 정교하게 문제를 바라볼 기회를 놓치고 만다. 뇌는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싶어 하며, 사회적 요령보다는 즉각적인 문제 해결이 1순위인 ‘트러블 슛(trouble shoot) 모드‘로 진입하기를 원한다. 주변에서 문제가 보이면 곧바로 강하게 반응을 하게 되고, 이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솟구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체 왜 빌어먹을 양말을 방바닥에 두냐고!"
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말이다.

앞에 펼쳐진 풀밭에 회색 고무관이 놓여 있었는데, 몇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보고 뱀으로 착각한 것이다. 내 뇌가 나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주변 환경을 스캔하여 ‘뱀‘을 발견하고 경고음을 울려서 나를 멈춰 세웠고, 나는 몇 초가 지나서야 그게 그저 고무관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보인 반응 뒤에 어떤 시스템이 작용하는지 안다. 반응을 뒤에서 관장하는 주인공은 뇌의 일부분인 편도체(amygdala)로, 아몬드(almond)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편도체는 1980년대에 발견되었는데, 처음 발견된 아몬드 모양 외에도 더 많은 부분이 편도체에 속한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하지만 이미 명칭이 정해져서 처음 그대로 쓰고 있을 뿐이다.
편도체는 여러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데, 기억과 감정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분을 해석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우리 주변의 위험을 탐색하고 발견하는 즉시 경고음을 울리는 것이다. 경고음은 편도체가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 그러니까 HPA축을 작동시켰다는 뜻이다. 편도체가 작동하는 방식을 통상 ‘화재경보 원칙‘이라고 부른다. 한 번 덜 울리기보다는 한 번 더 울리는 식이다.

‘스트레스‘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지만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스트레스가 꼭 필요하다. 단기간의 스트레스는 집중력을 높이고 사고 기능을예리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직장에서 하루 혹은 일주일 정도는 힘겨운 나날을 보내도 별반 이상이 없다는 말이다.
신체의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은 우리가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HPA축을 제거한 실험동물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면 이해가쉽다. 이 실험동물들은 만사에 심드렁하고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으며 일부는심지어 먹는 것에조차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피로증후군을 보이는 사람들에게서도 이와 유사한 패턴을 관찰할 수 있다. 피로증후군은 어마어마한피곤을 느끼며 HPA축이 더는 정상적으로 활성화되지 않는 탓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다. 뇌에 주는 부담이 너무 강하고 오래 지속된탓으로 보인다.

HPA축은 개, 고양이, 쥐, 그 외 다른 동물들이 스트레스 및 위협에 대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동물들이 HPA축을 사용하는 방식은 우리와는다르다. 쥐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듬해 여름에 자신의 영역에 고양이 수가 늘어날지 모른다면서 자신의 HPA축을 활성화시킬 수는 없다. 어떤 백상아리도지구 온난화로 향후 10년 동안 물개의 개체수가 줄어들 거라고 걱정하면서코르티솔을 분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만약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지" "만약직장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망치면 어쩌지" "만약 아내가 나를 떠나면 어쩌지"
같은 앞선 걱정이 인간의 HPA축을 활성화시킨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질일지도 모르지만, 이것때문에 피하고 싶은 것까지 예견하기도 한다. 어쩌면 해고를 당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버려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택담보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지도모른다는 생각으로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우리의 지적 능력으로 인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뇌는 진짜 위협과 상상한 위협을 구분하기 어려워한다.
불안은 미리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을 작동하는 것으로, 신체가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게 이상할 것은 없다. 소파에 누워 있다가 일어나려면 몸을 일으키기 전부터 혈압이 높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마찬가지로 불안은 신체가 사전에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을 작동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항상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이 늘 작동하는것과 마찬가지다. 완전하게 작동한다기보다는 항상 바로 작동할 수 있도록 대기 중인 셈이다. 위험이 나타나면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