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진화하면서우리가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각이 생겼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정보를 숨겨주는 기능을 한다. 외부의실제 현실이 어떻든 간에 이것이 우리가 아는 현실의 대부분이다. 12우리는 머리 밖의 실제 현실이 머릿속에서 경험하는 현실 모형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고 그 소리를듣는 사람이 주위에 없어도 기압에 변화가 일어나고 땅에는 진동이 일어난다. 나무가 넘어가는 소리는 사실 우리의 뇌에서 만드는 효과다. 발가락을 찧고 그 부위가 욱신댄다면 그것도 착각이다. 통증은 발가락이 아니라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세상에는 색이 없다. 원자는 무색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색은 눈 안의 세 가지 추상체, 곧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의 혼합으로 나타나는 결과다. 사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동물의 왕국에서 상대적으로 결핍된 종이다. 일부 새에게는 추상체가 여섯 개가 있고, 갯가재에게는 열여섯 개가 있으며 벌의 눈은 하늘의 전자기 구조를 볼 수 있다.
적대적 환경에서 살던 원시 인류에게는 무엇보다 공격성과 신체 능력이 중요했다. 하지만 협력할수록 이런 능력의 효과가 감소했고, 인류가 공동체로 정착해서 살기 시작하면서 공격성과 신체 능력은 오히려 골칫거리가 됐다. 과거에는 신체 능력이 우세한 사람들이 잘 살았지만 공동체를 이루면서부터는 남들과 잘 어격한도록 정교하게 조정되었다‘ 라그울리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았다. 공동체에서 살아남으면 자손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따라서점차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 출현했다. 새로운 인간은 조상들보다. 뼈가 가늘고 약했고 근육도 크게 줄어서 신체 능력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 공동체에 정착하는 데 적합한 행동을 하도록만드는 뇌 화학물질과 호르몬을 타고났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공격성이 줄어든 대신에 협상과 거래와 외교에 필요한 심리 조작에 능숙해졌으며, 타인의 마음이라는 환경을 통제하는 데 뛰어난능력을 보였다.
어떤 동물도 인간만큼 가축화되지는 않았다." 우리의 뇌가 원래는 "포식자와 한정된 식량과 혹독한 날씨의 위협적인 세계에서 살아남도록 진화했을 수 있지만 지금도 우리는 그 못지않게 예측 불가능한 사회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뇌에 의존한다." 예측 불가능한 인간들, 이야기의 소재다. 현대인에게 세계를 통제한다는 의미는 다른 사람들을 통제한다는 뜻이자 이해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매료되고 타인의 얼굴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는다. 매료되는 순간은순식간이다. 유인원과 원숭이의 부모가 새끼들의 얼굴을 거의 보지 않는 데 반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식의 얼굴을 바라본다. 또갓난아기조차 다른 사물보다 인간의 얼굴에 더 많이 끌리고 태어난 지 한 시간만에 타인의 얼굴을 모방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애니미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문에 손가락을 찧고는 통증이 훑고 가는 그 혼란의 와중에도 발로 문을 걷어차고 애꿎은 문을 탓하면서 문이 악의로 나를 공격한 거라고생각한 적이 있지 않은가? 옷장을 조립하다가 다 꺼지라고 소리친 적이 있지 않은가? 스토리텔링 뇌가 나름의 문체로 서투른 오류를 범하면서 해가 나면 낙관적이 되고 구름이 잔뜩 끼면 비관적이 되게 만들지 않는가? 차에 인격을 부여하는 사람들은 차를파는 데 관심이 적은 것으로 나타난 연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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