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 있는 게 아니라, 가끔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한 작가는 꼬집듯 말하고 있다. 사람의 이기적인 면을 잘 꼬집는 말이지만,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정이니 뭐니하는 거창한 말은 빼더라도, 언제 만나도 편안하고 마음 놓이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같이 있는 것은 불편해서, 괜히 담배를 피우거나, 해도괜찮고 안 해도 괜찮은 말을 계속해야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 편안해져서, 구태여 의례적인 말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같이 아무 말 않고 오래앉아 있으면 불편해지는 사람을 친구라 부르기는 거북하다. 친구란아내 비슷하게 서로 곁에 있는 것을 확인만 해도 편해지는 사람이다. 같이 있을 만하다는 것은 어려운 삶 속에서 같이 살아갈 만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그런 친구들이 많은 사람은 행복할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정음사, 1968)의 가장 끔찍한 전언은 맨 앞 대목에 숨겨져 있다. "……… 그러나 인간의 사는 힘은 강하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10.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라…… 그 동물은 체념에도 쉽게 익숙해진다. 불편하고 더러운 것, 비인간적인 것에 익숙해진 인간의 모습은 더러운 것인가, 안 더러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