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가 아주 정확하게 사람 심리를따라간 거죠. 안나의 자살은 충동적이에요. 생각해보세요. 음식 메뉴를두고도 한참을 고민하는 게 인간인데, 하물며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것에는 얼마나 갈등이 심하겠어요. 생각은 있지만 실천하기는 힘든 일이죠. 그러니까 하나 둘 셋, 준비해서 가는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뛰어내리는 겁니다. 모든 자살은 충동적이에요. 다만 개연성은 있어요. 미시적 우연이지만 거시적 필연인 것이죠. 미시적으로는 충동적인 것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늘 자살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안나도 마찬가지로 이미 자살을 생각했어요. 언젠가 내가 죽어버리면 브론스키가 고통을 받겠지, 하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돌아보니 아이가 있고사랑하는 연인 브론스키도 있어서 결정을 못 하고 생각만으로 지나가죠. 그런데 기차역에서 충동적으로 결정해버린 거예요. 안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마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역과 죽음의 테마, 사랑의 탄생과 결부되어 잊을 수 없게 된 이 테마가 그 음울한 아름다움의 힘으로 절망의 순간에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삶을 작곡한다.
문학동네 판 『안나 카레니나를 번역한 박형규 선생의 해설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의 소설 속에는 악인도 선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이런 보통명사는 등장인물 성격의 한 가지 측면만 생각하는 것이다." 어느 스님이 사람은 물이다‘라고 표현한 것과 일맥상통하죠. 물은 고요한 곳으로 흘러갈 때는 얌전하지만 폭포를 만나면 거세지죠. 물의 성격이 그렇습니다. 저도 그래요. 나쁜 사람 만나면 거칠어지고, 좋은 사람 만나면 착해지고, 조용한 사람을 만나면 차분해지죠. 이게 저고, 안나고, 브론스키고, 바로 우리들입니다. 때문에 톨스토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아주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죠. 극적인 게 아니라 매우 사실적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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