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구를 사용하든 아름다움과 마음의 빛을 전하겠다는사명감만 갖고 있으면 된다. 주위에 행복을 나누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며,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행복을 나누면 모든 사람이 다 예술인이 될 수 있다. 그 누구도 예술을 어려워하지 않게 진입장벽을 없애는 것이 바로 예술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음악을 들을 때 우리의 영혼, 즉 우리의 본질은 승화(昇華)한다. 1초마다 10개씩 셈해도 전부 파악하기까지 며칠이 걸릴지 모를 정도로 수많은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우리의 뇌도 음악에 반응해 진동한다. 신경세포 하나 안에는 0.07 볼트의 전기가흐르는데, 뇌 안에 1천만 개 정도의 세포가 공존한다고 하니 단순 계산해도 70만 볼트의 생동성이 머릿속에서 꿈틀대는 것이다. 음악이라는 예술이 갖는 그 아름다운 진동이 우리 마음의진동과 만났을 때, 인간이 지닌 무의식의 세계가 발전하고 승화한다. 예술은 삶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영혼의 가장 깊숙한곳까지 탐험하게 하는 미지의 여행이다.
또한 노트에 "체념, 받아들임. 받아들임! 이제 우리는 기심원한 고통으로부터 도덕적 우위를 이끌어내서 주님의 용서에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자."라고 적기도 했다. 이 얼마나놀라운 변모인가?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힘든 고뇌의과정을 거쳤을까?
비참한 운명은 이제 숭고하고 신성한 것이 되었다. 심지어 베토벤은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그가 신원 미상의속칭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장애를 행복한 마음으로 극복했을 때는 언제나 어떤 기쁨을 맛보게 된다오.‘라고 쓰여 있었다. 깊은 우정을 나눈 안나 마리 폰 에르되디 백작 부인에게는 "우리는 오직 고통과 즐거움을 위해서 태어났으며, 우리 중에서가장 뛰어난 사람은 고통으로부터 기쁨을 이끌어낸다고 말할 수있을 것입니다."라고 편지를 썼다.
이렇듯 베토벤에게는 고통조차도 창조적인 영감을 위한 무하한 원천이 되었으며, 이제 그의 예술은 프리드리히 실러의 칸- 전이 관점을 닮게 되었다.(실러는 선의 표현인 인간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도덕적 행위를 선택하는 인간의 자유를 절대적인 의무로 보았다). 실러는 "비극적인 예술의 첫 번째 법칙은 고통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다. 두번째 법칙은 고통에 대한 도덕적인 저항을 표현하는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베토벤이 남긴 작품과 글을 통해 우리는 그가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초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카서스 산에 갇힌 반신반인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운명에 굴복하기를 거부했던 반면, 베토벤은 인류에게 영적인 불을 주면서도 신의 의지로부터자유로웠던 것이다.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에는 운명에대한 반항과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시도, 살아오면서 벌인 모든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자아를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며 이롭게 사용하면 된다. 우리의 본질을 빛나게 하는 사다리의 역할로 말이다. 고유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표현한다면, 나라는 유일한 존재를세상이 누릴 수 있게 선물로 주는 것과 같다. 만약 스스로를 무시하고 다른 누군가를 닮으려 한다면 세상이 고유한 나라는 존재를 누릴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음악 역시 다를 바 없다. 음악조차 침묵에서 나와야 한다. 음악의 첫 음은 바로 침묵이고 마지막 음도 침묵이다. 음악의 침묵은 화가에게 하얀 도화지와 같다. 본질인 침묵에서 자아인 소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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