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노래하든 슈만의 이 연가곡은 마음속의 동경을 일깨워줍니다. 그리움과 갈망이 귀한 것은 살아 있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의 기쁨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봄은 그런 때 여야 합니다.
영화를 다 본 후, 저 나름대로 ‘내 안에 나의 숲, 나의 정원을간직하자‘라고 영화의 메시지를 정리해보았습니다. 귀농은이 메시지를 위한 상징일지도 모릅니다. 살다가 지쳐 쓰러지고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를 때, 다시 생명력을 회복할 수있는 곳을 우리는 나름대로 틈틈이 가꾸고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들 때 찾아갈 수 있는 나만의 치유 공간은 곧 행복의 비밀이지 않을까요. 그 공간에 따스한 사람의 온기까지더해진다면 더욱 좋겠지요.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를 보며 잔잔한 음악이 참 좋다 싶었습니다. 엔딩곡인 융진의 〈걷는 마음도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와 함께 개인적으로 떠오른 음악이 있습니다. 스위스의 재즈 피아니스트 티에리 랑의 너무나 아름답고 명상적인 곡 나의 정원Private garden)입니다.
왜 사람들은 행복한 시간에 굳이 상실의 그림자를 보게 되는것일까요? 행복한 순간이 흘러가야 다른 행복한 순간이 오는것이 이치인데, 그걸 믿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쓸쓸한 마음에 이렇게 자문하다가, 구약성서에 나오는 ‘세속현자‘인 코헬켓의 권고를 곰곰 새겨봅니다.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 (코헬 7, 14)좋은 것을 그늘진 마음 없이 즐기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좋은 것을 누리면서도 기뻐할 줄 모르거나, 행복한순간에도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앞서곤 하지요. 그래도 애를 써야 합니다. 인생에는 좋았던 순간에 집착하며사라지는 것을 미리 두려워하고 서글퍼하는 것과는 다른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배워야 합니다.
곧이어 그녀는 절망적으로 묻습니다.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 순간마다요?" 이런 그녀의질문에 작가의 분신이라 할 ‘무대감독‘은 대답합니다. "없죠. 성인들이나 시인들이라면 아마…." 죽음의 문 앞에서 우리의 삶은 일회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더없는 무게를 얻습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우리 삶의 모든존재를 담게 됩니다. 그러기에 죽음에 대한 명상은 우리가생생하게 살아 있는 지금의 삶을 살게 하는 길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죽음으로 단절되는 유한한 삶에서 슬픔과 허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약속된 영원한 삶의 빛나는 조각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살아 있는 희망이지요.
하나 여행은 이렇게 달콤쌉씨름한 탐미적인 항유만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는 불편함과 한계들 속에서 많은 것을 새롭게 깨닫는 배움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작가 실뱀테송은 지리학을 전공한 후 여행자로서의 삶을 살고, 그 깨달음을 글로 전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를 사랑하는독자가 적지 않지요. 그는 자신의 에세이 『여행의 기쁨』에서여행과 유랑에서 단련되는 몸과 정신, 확장되는 시선에 대해인상적인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고되게 걷는 여행과 유랑이 사물들의 본모습을 보여준다고 믿었습니다. 다음의 글에서 말하듯이 말입니다. 내가 신발 밑창만을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고통을즐기는 취향 때문이 아니라, 느림이 속도에 가려진 사물들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차나 자동차의유리창 뒤로 풍경을 흘려보내면서 풍경의 베일을 벗길 수는 없다.
. 『불안의 책』의 시작은 의미심장합니다. 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앞 세대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신을 믿었듯이,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시대에 태어났다. (…) 그러니 나처럼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얼마 안 되는이들에게서 단념이라는 삶의 방식과 숙명이 된 관조를 빼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종교적인 삶이 무엇인지 모르고, 알 능력도 없다. 페소아의 시적, 철학적 탐구의 중심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가 있습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고정된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떠남‘에서 시작됩니다. 파스칼 메르시에의 소설 『리스본행야간열차』에서 페소아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모든 사람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그들이 내가 아니기 m문이다. 내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은 모든 불가능하것들 중에서 가장 불가능하게 여겨지므로 날마다 열망하는 것이고, 슬픈 순간마다 체념하는 것이다. 흥미롭게 읽었던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을 때 저는 독일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고있었습니다. 그 어느 여름의 시작에 혼자 이국의 영화관에서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나의 리스본은 어디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누구나 여름에 여행을 꿈꾸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로의 여행, 일상의 참 의미를 찾는 여정이 필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의 일상과 애써 ‘낯설어 지고 지금까지 욕망하고 바라던 것이 정말 의미 있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절박하다는 것을 적어도 우리의 무의식이 알고, 신호를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영화를 보고 생각에 잠겼던 그때가 기억납니다. ‘이제 메르시에도, 페소아도 낯선 이름들이 아닙니다만, 때때로나의 인생이 나 자신에게 낯설어야 한다는 그 여름의 깨달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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