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은 사람의 세 가지 즐거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있다. "어렸을 때 뛰놀던 곳에 어른이 되어 오는 것이 한 가지즐거움이고, 가난하고 궁색할 때 지나던 곳을 출세해 오는 것이한 가지 즐거움이고, 나 혼자 외롭게 찾았던 곳을 마음이 맞는좋은 벗들과 어울려 오는 것이 한 가지 즐거움이다."

사람은 관물을 통해 사물의 가치를 사물의 이치로 인식한다.
사문의 이치를 인식한다는 것은 곧 사물이 각기 지닌 가치를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물의 이유는 사물의 이치를 인식해사물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데 있다. 단순히 사물을 보지 말고사물의 이치를 봐야 비로소 사물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관물이란 사물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고, 마음이 아닌 이치로 보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낫고, 이치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보는 것보다 낫다. 이치로 사물을 바라보면 환히 통하여 보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관물에는 세 가지 등급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등下은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고, 중등中等은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것이고, 상등上等은 이치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눈으로 보면 한가지 사물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보면 한 가지 사물 밖의 다른 사물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치로 사물을보면 ‘일이관지一以貫之’ 곧 한 가지 사물로 만 가지 사물을 환히꿰뚫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봄날 햇볕처럼 따뜻하고 온화해야 넓은 도량을 갖출 수 있다. 또한 가을 서리처럼엄숙하고 엄정해야 높은 절개를 지킬 수 있다. 사람이든 일이든품을 때는 봄날 햇볕처럼 따뜻해야 하지만, 끊을 때는 가을 서리처럼 서늘해야 한다. 천하의 천한 일인 똥을 날라 먹고사는 엄행수의 덕을 높여 칭찬하고 벗의 정을 나눈 이덕무에게서 봄날 햇볕 같은 넓은 도량을 읽을 수 있다면, 재물과 권력과 명예와 출세를 멀리한 채 처사와 은사의 삶을 추구하는 이덕무에게서는가을 서리 같은 높은 절개를 엿볼 수 있다. 이덕무가 생각한 인격의 궁극적인 경지는 넓은 도량과 높은 절개를 함께 지니는 것이다. 가을을 좋아해 가을 시를 많이 남긴 이덕무가 그 못지않게‘
봄을 읊은 봄 시를 많이 남긴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린아이가 거울을 보고 웃는 것은 뒤쪽까지 환히 트인 줄 알기 때문이다. 서둘러 거울 뒤쪽을 보지만 단지 까맣고 어두울 뿐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그저 빙긋이 웃을 뿐 왜 까맣고 어두운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기묘하다. 거리낌이 없어서 막힘도없구나!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무엇에도 막히지 않아야 참된 감정과 진실한 마음을 드러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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