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지 않기로 결한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욕망과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속 한 귀퉁이에 약간의 여유공간을 마려하수는 있습니다. 모방욕망과 무한경쟁 속에서 매일 조금씩 죽어가는게 우리 영혼입니다. 그 영혼이 잠깐 산소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꼽아봐야 열 손가락을 채우기도 어렵습니다. 그 차가운 진실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이같은 차가운 진실의인정은 욕망의 인정만큼이나 소중한 정신승리의 출발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원래맡고 안 맞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거죠.
세상에는 분명히 나랑 안 맞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관심법(觀心法) 스타일의 비과학적 관찰에 따르면 제가 만나는 사람들 중 10퍼센트 정도는 늘 그렇습니다. 딱히 이유를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함께 있으면 피차 불편한 사람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불편함을처음부터 모두 궁합 탓으로 돌리면 안 됩니다. 우선 그 불편함의 원인이 1)나 때문인지 2) 상대방 때문인지 3)누구의 탓도 아닌지 분석해봐야 합니다. 말을 조금 바꾸면 1)나의 욕망 때문인지 2)상대방의욕망 때문인지 3)욕망의 충돌 또는 욕망의 문제와 아예 상관없는 것인지 살펴보는 겁니다. 나 때문에 생긴 문제라면 당연히 나를 바꾸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내 ‘행위‘ 때문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 때문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에 보이지 않는 어떤 에너지가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내면의 힘 같은 거죠. 앞서 말씀드린 ‘궁합‘도 아마 이런 에너지 시이의 일치를 지칭하는 단어일 겁니다. ‘헤어질 수 있는 용기‘를 갖느다는 것은 상대방과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기 위치를 확보한다는 이미를 지닙니다. 그런 용기 또는 에너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관계를 유연하게 지속시킬 수 있습니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관계를 끝장낼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원칙은 거의모든 관계에 적용됩니다.

비밀의 방 신경숙 선생의 『엄마를 부탁해』(창비 2008)를 보면 엄마가 평생 혼자만 간직했던 마음속의 연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들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엄마가 밀가루 담긴 양은함지를 머리에이고 신작로를 걸어 집으로 가던 중 낯선 아저씨를 만나는 것으로이야기가 시작되지요. 자전거를 타고 있던 그 아저씨는 계속 따라오면서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거워 보이는 함지를 들어준다면서 "어차피 빈 자전거니 마을 초입의 가게에 내려놓고 가겠다"고 하죠. 그 말을 믿고 아저씨를 먼저 보낸 엄마가 약속된 가게에 가보니함지는 없었습니다. 자식들의 저녁밥을 도둑맞은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미숙한 도둑이라서 수소문해보니 곧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저씨 집을 찾아가보니 그는 출산 중인 아내 곁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지요. 도둑을 잡으러 갔던 엄마는 그 집 아기를 받아주고수제비를 끓여 산모가 있는 방에 넣어주는 등 수발만 들다 돌아옵니다. 며칠 후 미역을 들고 다시 찾아갔을 때 산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지요. 그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엄마는 그 집 갓난아기에게젖도 물려주고, 아저씨와 오랜 친구관계를 이어갑니다. 엄마와 아저씨는 손 한번 잡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늘 위로가 되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엄마는 아저씨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 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 할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물살때마다 뗏목을 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 있어 좋았소.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잘 다독이며,
시만의 공간을 지키고, 깊은 내면을 이웃과 나누다보면, 나도 모그는 새 주변에는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비-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혼자서도 행복할 줄 아는게이 사냥꾼의 광기 속에서 남을 지켜주려는 따뜻한 이웃,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동지 들이죠. 그런 개이들과 아주 작은 연대가 싹트고 나면, 이 험한 정글 속의 삶도 한결견딜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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