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긴 세월 동안을 시종 자신의 상처 하나 다스리기데 급급하였다면, 그것은 과거 쪽에 너무 많은 것을 할애함으로써 야기된 거대한 상실임이 분명합니다. 세월은 다만 물처럼 애증을 붉게 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옛 동산의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 하는 것 또한 세월의 소이(所以)입니다.
감옥에서 15년 세월이 상처를 치유하는 데만 급급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면서, 내부에 새로운 희망의 싹을 키우고 있었다.
다산의 저작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강진에서의 18년 유배 생활과자신을 비교해 보기도 한다. 부러웠던 것은, 다산이 생사별리(生死別離) 등 갖가지 인간적 고초로 가득 찬 18년에 걸친 유형의 세월을빛나는 창조의 공간으로 삼은 비약(飛躍)이었다. [사색18, 318] 그 비약은 어느 날 갑자기 화려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하나씩쌓아 가는 덧셈의 누적‘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