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침 발라 넘기는 두툼한 숙제장이라는 말씀이마음속 깊이 들어오네요. 달팽이 등에 짐 지워진 딱딱한 달팽이집은 짐짝이기 이전에, 실은 그에게 정체성이겠지요. 삶은 제게 지워진 숙제장이기 전에 제가 감당할 제 모습 그 자체라는 것 또한 잊지 않겠습니다. 달팽이는 온 바닥을 면면이 맞대고 나아가지요. 땅이거칠면 거친 대로, 마르면 마른 대로, 젖으면 젖은 대로 제 길을 닦아 나아갑니다. 느리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달팽이처저도 제 고유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아가고 싶어요. 과정이 순간순간 유쾌하고 행복하다면 그 자체로 삶의 목적에 이르는 길이 되리라 믿습니다.
타자를 배려하는 삶, 상생은 타자를 위한 삶이 아닙니다. 그건 곧 나를 사랑하는 중요한 방식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이해할 때 비로소 타자를 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말하지 않나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요.. 떨림으로 누군가와 마주할 때, 누군가를 포옹할 때 내 존재감은 얼마나 빛나던가요. 그러니까 결국 타자는 나를 존재하게 하는 위대한 힘이지요..
목표는 매우 중요하지만, 목적은 설정하지 않는 게 좋다‘라는 겁니다. 목표에는 마치 별빛처럼 우리를 끌고 가는 힘이 있지만, 목적에는 의도된 욕망이 작용하면서 집착하기 쉬워진다. 목적한 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과 상처를 얻습니다. 또 목적한바를 이루면 금세 교만해집니다. 한마디로 목적은 순수성을 잃게 하지요. 목적은 수단을 필요로 하지만 목표는내가 갈 길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나는 ‘목표‘ 하면 별빛 많은 밤하늘과 끝없는 길, 모퉁이에 한 마리 새처럼 놓인 작은 푯대를 떠올립니다. 내가어디엔가 쓴 적이 있는데 진정한 용기란 순수에서 비롯합니다. 순수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무릅쓸 수 있지요. 백년어서원을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 상황이 닥칠 때마다 나는 이 순수, 초심을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덕분인지 중요한 강의에 사람들이 몇 명 오지 않아도, 종일 운영한 공간의 수입이 만 원 한 장일 때도, 가끔 오해받는 일이 생겨도 그다지 실망하지 않습니다. 목적을 미리 상정하지 않으니 그만큼 삶을 다양한 관점에서 수용할 수 있는 폭이 생기고 관용의 힘이 작용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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