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이 별로 없으나 가난을 모르는 사람들, 잃을 것이많지 않아 경계심도 적은 이들이었다. 그들의 주소 없는 삶은나를 흔들었다. 두 시간이면 해체와 조립이 가능한 집 게르를싣고 이동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집착이 없는 삶을 뜻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게르를 방문할 때면 그들은 늘 우리를 환영했지만 돌아서는 우리를 잡은 적도 없었다. 물질에 대한 집착또한 그 땅에서는 생존을 방해하는 요소로만 보였다. 더 많이가질수록 이동은 더 어려워질 테니까.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아마 내 생애 동안 그곳 알타이에서, 심지어 몸이 아플 때조차도 가장 많은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진짜 미소 말이다." 나는 완벽하게 이 구절을 이해했다. 알타이가 아니어도 몽골에는 무한하고 광활한 풍경이 주는 위안이 있었고, 오래된삶의 방식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주는 평화가 있었다. 그러나이제 나는 정착과 유목이 나를 분열적인 존재로 만드는 화해할 수 없는 욕망이 아니라 내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모순임을안다. 유목을 향한 갈망이 내 세계를 끝없이 확장시켜주는 만큼 정착을 향한 동경은 내 일상을 견고하게 지탱해준다. 이두 개 중 무엇도 포기할 수 없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든 인간은 저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아름다운 존재이기에.
"세상은 한 몸, 누군가 아프면, 모두가 아프다." 하페즈 못지않게 사랑받는 이란의 시인 사디의 시 구절이었다. 이란에서 시는 일상이다. 정치적 논쟁에서도 시를 읊고, 경조사도 시를 인용해 알린다. 전국에 시인의 이름을 딴거리와 광장, 찻집이 즐비하다. 사디 광장 옆 하페즈 거리 루미 찻집에서 약속을 잡는 일이 허다하다. (*이란 대사였던 송웅엽 씨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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