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보면, 실패의 경험 없는 승리에 대한 확신,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강고한 투쟁력, 타협하기 어려운 상명하복의 교조적 문화, 다른 목소리를 포용하지 않는 적대적 계파주의가 이른바386 DNA로 자라났다. 자나 깨나 민주주의를 원했던 386세대가 진정한 민주주의자로 남을 수 없는 한계는 이런 DNA 때문이 아닐까. 당시 이들은 피와 눈물로 민주주의를 챙취하려 노력했을뿐 민주주의를 즐겁게 향유하는 법을 익히지는 못했다.
1990년 11월 구속된 뒤 감옥에서 5년 83일을 꼬박 살고 나오니 남은 건 부도난 집과 병환으로 날 알아보지도 못하는 아버지뿐이었다. 학원 강사를 한다는 후배한테 ‘이 쓰레기 같은 것아!‘라고 욕해줬는데,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 (중략) 우리는 살아야 했고, 대치동은우리를 통해 살아야 했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들어간 것이다. 대치동에 뛰어든 우리는 분파가 달랐지만 뜻은 비슷했다. ‘자본주의의더러운 돈을 받아먹고 이렇게 타락해 있지만 잠시뿐이다. 유학 자금이든 우윳값이든 우리 목표를 이룰 때까지만 잠시 눈을 감자‘라고(최보윤, 2013). 잠시만 타락해 있자고 질끈 눈을 감았던 386 출신 스타강사들의 성공은 ‘학원 붐‘이라는 시대적 조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30대에 자수성가한 백만장자 사업가 엠제이 드마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동산과 아파트는 한국에서 ‘부의 추월차선(millionaire fastlane)‘이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선 아파트라는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야 했다. 재산이 공개된 다수의 고위공직자들이 공식을 적극 실천했을 뿐이다. 그 기회를 노렸던 대부분 사람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파란 눈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한 프랑스인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Valerie Gelezeau)의 『아파트 공화국』(2007)에는 아파트를 통해 부를 축적한 표준적인 한국인의 방식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인터뷰 대상자 중 누구도 본인이 부동산 투기를 했다고 증언한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이 재산을 불리는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는 사실에 모두들 깊이 공감한다. 물론 부동산 불패의 신화는 386세대 이전에도 있었다. 40~50년대생 역시 서울 강남과 목동, 상계동 등의 신시가지 개산 증식의 호재로 활용했다. 하지만 그 기회는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개발 정보가 권력과 그 주변부 위주로 돌았기 때문인데 이것이 세대 내 양극화를 심화하는 한 원인이 됐다.
악은 그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선(善) 속에 작게 똬리를 튼악도 있고, 악으로 비판을 받지만 그 안에 일말의 선이 녹아 있기도 한다. 선과 악을 가른다는 것이 그래서 어렵다. 세상이 선과악, 이분법으로 정돈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은 침묵과 발화 사이에서 고뇌한다. 그리고 아마도 자식을 취업시켜준 힘깨나 쓰는 부모들은 집에 가서 ‘이 아빠(엄마)의 능력을 봤지? 잘해라‘고 한마디 던졌을 것이다.
꼰대스러움은 종종 ‘대의‘나 ‘공공의 선과 같은 거창한 포장을 뒤집어쓰고 나타난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남북관계라는 대의를 위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무리하게 추진했던 일이 개인보다 집단, 국가를 강조해 벌어진 일이라면(김지은, 2018) 공고기관의 수장이 법인카드로 방울토마토를 사거나(원성윤, 2016) 내연여와의 데이트 비용을 쓴 것처럼 공사 구분이 불확실한 꼰대 근성이 드러난 일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숱하다. 꼰대는 갑질, 헬조선과 맞닿아 있다. 이들은 모두 공정하지 않음을 문제 삼는다. 왜 공정하지 않은가. 걸핏하면 ‘법대로 해‘를 외치지만 법과 제도가 원칙대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쁘고 급하면 언제든 우리 사회 ‘갓길‘에서 전력질주 할 수 있는 권리를가졌다고 생각하는 기득권들이 너무도 많다. 당최 믿을 구석이 없으니 한국 사회 신뢰도가 선진국 가운데서도 바닥을 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요즘 용감한 반(反)꼰대들은 수시로 묻는다 "그거 규정에 있어요?"
인간은 살아 있다는것 자체가 가해자의 성격을 띤다. 이슬을 먹고 살지 않는 한 어떤 생명을 빼앗아야 생존할 수 있다. 자신이 가해자임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어떤 윤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강성만,2018).
18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혁명을 선두에서 이끌었던 로베스피에르가 공포정치 독재자가 되어 결국 처형으로 생을 마감한 일도 있다. 개혁의 주체들이 시간이 지나 개혁의 대상이 되는 일은다수의 역사적 사실들이 증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386세대의보수화 기득권화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세대보다 빠르게 사회적 목소리를 얻고 가장 길게 그 힘을 유지하고 있기에 이들의 보수화 기득권화는 한국 사회에 더큰 부담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달라질 건 없다는 체념의 언어부터 버려야 한다. 체념은 특히 오늘날 청춘들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가 되어버린 듯하다. 출산과 결혼, 취업조차 인생 계획 리스트에서 하나씩 작제해가는 N포세대는 바랄 게 없으니 절망할 이유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까지 한발 앞서 지워버리는 편리한 무기력이 슬며시 이식되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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