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분리수거를 하면서 보니 폐지함에 초등 수학 문제집이 잔뜩 있었다. 모두 아내가 푼 것들이다. 이제껏 그 많은 문제집들을 버리며 나는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아내의 귀엽고 특이한 취미 생활 정도로 넘길수도 있는데, 나는 이상하게 거슬렸다. 아내는 수학 영재였다.
학창 시절 내내 온갖 수학경시대회를 휩쓸었고, 고등학교 3년동안 열두 번의 중간·기말고사 모두 수학 만점이었고, 학력고사
에서는 안타깝게 수학을 한 문제 틀렸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왜 초등 수학 문제집을 그렇게 풀어 대는지 이해할 수가없었다.
이유를 묻자 아내는 재밌어서, 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당신 수준에 그게 뭐가 재밌니? 유치하기만 하지."
"재밌어. 엄청 재밌어. 지금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거 하나 밖에 없거든."
아내는 여전히 초등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고, 나는 아내가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김지영씨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