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 -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배우는 정의
켄지 요시노 지음, 김수림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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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 / 켄지 요시노

 

 

"우리 관객들은 처음에는 복수를 꿈꾸는 자에 대한 무한한 동정심을 품습니다. 그리고 그, 혹은 그녀가 성공하길 빌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복수에 무감해집니다. 생생하게 그려진 복수의 화신의 만행을 보며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거죠. 결국 복수 자체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공포를 체감하게 될 뿐입니다.

 

-P.52-

 

1.

 

 출간된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인문서적중에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정의' 열풍을 불러 일으키며 나오는 책마다 베스트 셀러에 등극시키는 기염을 뽐냈더랬죠. 이 '정의'라는 개념을 상당히 철학적으로 담아낸 책이 왜 그렇게 인기가 있었던거고, 오늘날에도 사랑받고 있는걸까요?

 

 사람들은 대체로 결핍된것을 갈망합니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것. 그렇지만 그 '정의'에 대한 개념이 정확하지 않아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것.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정의'를 필요로하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책은 이런 '정의'를 영미문학의 최고봉이라불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 찾아나섭니다. 법학과 교수가 문학과 법이라는상이한 학문들 속에서 어떤 키워드로 '정의'를 설명할지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판관이 법의 언명에만 충실할 수도, 한쪽에 대한 감정이입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부터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모든 사안에 대한 규율의 '일반화'인 법을 '특정한' 사안에 적용해야 한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오랫동안 씨름해 온 법의 엄정한 집행과 감정이입이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가치는, 이 어려운 임무를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로 만들어 버렸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에스컬러스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중용의 도, 고대인들이 닦은 진리의 길을 다시 한번 거닐어 보아야 할 시점이다.

 

-P.163-

 

2.

 

 성인이 되었건만 인문학서적은 저에게 아직도 낯섭니다. 한장 한잔 넘길때마다 앞에서 무슨말을 했는지 금방 까먹고, 심할경우 방금 읽은 문장도 잘 기억이 안납니다. 때문에 처음 읽기 전에도 겁이 먼저 들었습니다. 축축 늘어지는듯한 책의 재질과, 빽빽한 활자가 인문학 알레르기를 동반한다는 생각에 오랜시간 읽지 않았는데요 막상 손에 잡으니 술술 읽혀나갔습니다. 다른 인문학 서적들과는 다르게 이야기와 함께해 나갔기 때문에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읽을수 있었습니다. 책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현대판 실례를 함께 보여주며 '정의'의 여러가지 측면에 대해서 보여줍니다. 복수가 정도가 아니라는 교훈부터, 중세시대부터 있어온 '중도'의 이야기까지말입니다.

 

 아쉬운 부분이라면 미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어느정도 확립된 국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는점과, 조금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진 번역투 정도랄까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배우는 정의. 경이로운 천재의 감미로운 유혹을 이보다 더 쓸 수 있을까? 오늘날 예술과 정의에 대한 담론은 주로 책이란 매개를 통해 일반에 전해진다. 나도 비슷한 의도에서 이 책을 썼다. 이런 시도들이 쌓여 언젠가는 더 심오한 지혜를 찾아 헤매는 정치학계의 난리법석이 종식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나는 여러분의 바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P.442-

3.

 

 각각의 챕터가 모두 나름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파고 들었다지만 가장인상적이였던 이야기는 첫번째 챕터의 <티투스 안드로니쿠스>와 미국의 아프간전쟁을 연결시킨 장이였습니다. 폭력과 복수의 끊이지 않는 굴레. 정의에 관한 언급은 직접적으로 없었지만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것이 정의였을까 쉽게 유추해볼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내 나름대로의 정의에 관한 잣대가 생긴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고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성현들의 옛말이 틀린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새삼들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딱딱한 구조에 질린 사람들에게 좀더 재밌고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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