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굿바이 동물원 / 강태식

 

그건 아내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요즘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종이학이나 공룡 알을 접지 않는다. 대신 지갑을 열어 카드나 현찰을 꺼낸다. 그게 훨씬 빠르고 편리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건 없다. 그런 세상이다.

 

-P.44-

1.

 

 지난학기 국문과 마지막 수업 중 교수님 한분이 자신의 제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소설가 지망생이였던 제자는 매일같이 수십장의 원고를 교수님께 들고와 소설의 결함을 물었다고 합니다. 지나치게 상투적인 이야기와,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의 원고는 무척이나 읽기 곤욕이였지만, 제자의 열정과 끈기에 교수님은 매번 최선을 다해 학생을 지도해주셨습니다. 졸업 후 같은 꿈을 가진 후배와 결혼한 그는 소설을 위해 강원도로 내려갔고, 부인은 그녀보다 먼저 등단해 꿈을 이뤘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꿈을 이뤘을때,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남자는 더욱 독하게 마음먹고 매일을 도서관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부단히 노력한 남자는 몇년 뒤 고료 5천만원의 한겨례 문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아마 교수님은 끈임없이 자신의 꿈을향해 달려간 제자가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나 봅니다. 아직 풀어져있는 철부지 1학년들에개 꿈을 향해 노력하면 안될 일이 없다는 뻔한 이야기를 해주시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본인이 직접 느끼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지요. 당시 들떠있던 저 역시 이 이야기를 흘려넘겼습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서문을 늘려나간건 작품의 작가가 위에 언급한 제 선배, 즉 교수님의 제자기 때문입니다. 책을 넘기기 전까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프로필을 보고, 책을 읽고,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서평을 읽으며 문뜩 그때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책을 넘기니 좀 더 많은 것이 보였습니다. 실직 후 부인에 대한 미안함으로 계속해서 부업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이야기 역시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건 아닌가 추측하게 되어 더욱 재미있었던것 같습니다.

 



아내는 거짓말을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나는 안다. 매운건 마늘이 아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마늘 때문이 아니다. 사는 게 맵다. 메우니까 눈물이 난다. 한때는 나도 마늘을 까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래서 안다. 마늘보다 사는 게 백배쯤 맵다는 걸. 그리고 마늘을 깐다는 게 사람을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게 만드는지도.

 

-P.159-

2.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접어두더라도, 책은 정말 재밌습니다. 문장은 짧고, 쉽게 쓰여졌으며, 한문장 한문장은 무척이나 유쾌합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들은 무척이나 아리게 다가옵니다. 신나게 웃다가, 주인공이 처한 웃지못할 상황이 남일같지 않아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3.

 

 이야기는 '울고싶은 날에는 마늘을깐다'는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빨간 대야 가득찬 마늘을 까는 주인공 '김영수'. 서울의 평범한 4년제 대학을 좁업하고, 평범한 직장에 근무해,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그는 대한민국의 표준이라 할수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구조조정으로 인한 퇴직 명령이 전달되며 평범했던 일상엔 먹구름이니다. 젊지않은 나이에 그를 받아주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답게 살기위해 하루종일 마늘을 까고, 인형 눈알을 붙입니다.

 

 그러던 중 일거리를 알선해주는 브로커 돼지엄마가 그에게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공무원과 대우가 같은 동물원에서 근무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입니다. 그는 동물원에서 일하기 위해 치열한(나름대로) 경쟁을 하고 첫 출근을 합니다. 고생끝에 들어갔건만 그곳은 그가 생각했던 동물원과는 많이 다릅니다. 동물을 사육 하는 역할이 아닌, 동물이 되어 사육 당하는 역할. 그것이 '영수'의 일입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나름의 사연을 안고 이곳을 찾았습니다. 비인간적인 자신의 모습이 싫지만 어쩔수없이 인정해야하는. 그렇지 않으면 살수없는 세상. 그 더러운 공간에서 그들은 차라리 진짜 동물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동물원에 있으면 사람답게 살 수 있어.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 구실 같은 건 안 해도 돼. 솔직히 이 나라에서 사람 구실 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냐고. 난 거의 없다고 봐. 하지만 동물원은 달라. 사람 구실은 못하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야. 웃기지? 내가 그랬잖아. 사는 게 코미디라고. 자, 한잔해. 어때, 여기 죽여주지?

 

-P.214-

 

4.

 

 마르크스는 저서인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이성이 아닌 노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사상에 있어 노동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과한 질곡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신을 실현하는 창조적 능력이였습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기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다합니다.

 

  당시에는 긍정했던 마르크스의 문장들이 오늘날에는 참으로 낯설게 느껴집니다. 아마 그 역시도 이토록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서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나 봅니다. 산업은 더욱 발달했고,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곳에 기계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노동'이라고 보았을때, '노동'을 대신 해주는 기계(로봇)을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기계들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더이상 인간이 아닌것을까요?

 

  이야기가 조금 새어 나갔지만 오늘 읽은 <굿바이 동물원>은 인간의 가치가 동물원의 희귀 동물보다 낮아진 세상, 아니 오히려 동물이 부러운 사람들의 세상의 이야기 이므로 꼭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과연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귀함을 영위받고 살고 있는걸까요. 어쩌면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동물원이고, 우리는 이미 한마리 마운틴고릴라나, 바다코끼리로 전락해 버린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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