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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물리학자의 비행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평점 :
대부분이 돈세탁용이라는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다. 이른바 '새로운 민주주의'의 대통령, 중앙아시아 공화국 정당의 실력자, 러시아의 독재자,
아프리카의 전쟁 영웅, 아프간 비정규군의 지도자, 무기상, 그리고 그들의 여편네와 딸년들…. 요컨대 그들이 진짜 범죄자들이다. 그리고 그자들이
돈 버는 동안 그는 철도역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알제리의 십대 마약 밀매꾼들이나 쫓으며 인생을 탕진했다. 그가 끙, 소리를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방으로 건너갔다. 이런 쓸데없는 잡념들!
-P.40-
1.
로버트 해리스의 신간이
나왔습니다. 얼마 전 국내에 영화 <폼페이>가
개봉했었는데요. 바로 이 영화의 원작자가 로버트 해리스 입니다. 이 분의 책이라곤 영화와 동명의 제목인 <폼페이>를 본것이 다인지라 작가의
성격이 어떤 것 같다 감히 이야기하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스릴러에 덕력이 있으신 주변 이웃들의 표현을
따르자면 '히스토리 팩션
장르의
거장'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이더라구요. 뭐 <폼페이>의
역사적 고증 방법이라던지 살아 숨쉬는 듯한 묘사력을 생각해보자면 이러한 이야기에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작가의 신작이 나왔습니다.
<어느 물리학자의 추락>. 히스토리 팩션 팬들에게는 아쉽지만 현대물입니다. 스위스 제네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은 한 사내의
하루를 긴박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증권가를 배경으로 하고, 사건 전반적으로 과학적 사고가 깔려있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내용 자체를 이해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지만, 세부적인 사항들을 짚고 넘어가려면 밑도 끝도 없달까요. 신기한건 이런
지식들을 논리정연하게 고증하고, 사건에 연결시켰다는 점이였습니다.
“두려움은 경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서입니다. 대공황 시대의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생각해 보세요. 금융사에서 이보다 유명한 명언이 또 있던가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뿐이다.’ 사실 두려움은 인간사에서도 가장 강력한 감정입니다. 새벽 4시에 행복감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너무도
강렬한 정서이기에 다른 정서적 요인에서 비롯된 노이즈를 걸러내고 이 신호에만 집중하는 일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최근의 시장 동요 추세와 매체에 나타난 ‘두려움’과 관련된 어휘, 즉 테러, 비상, 공황, 공포, 혼란, 불안, 위협, 탄저, 핵 등의 빈도를
대비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얻어 낸 결론은 두려움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사실이었죠.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P.103-
2.
주인공인 알렉산더 호프만은 천재
물리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로, 25살 때 이미 스위스의 자랑 중 하나인 유럽 원자핵 공동 연구소에 들어간 천재입니다. 그곳에서 강입자 충돌기를 6년간
연구하고, 이후 자율적 기계 사고(일종의 인공 지능)에 심취하여 그 알고리듬을 연구하던 호프만은 연구소 측으로부터 자율적 기계 사고 연구의
위험성을 지적받고는, 연구소에서 뛰쳐나와 독자적인 연구를 지속하지요. 그 과정에서 파트너 휴고 쿼리를
만나고, 휴고 쿼리는 그에게 헤지 펀드의 가능성을 제안합니다.
이야기는 누군가
호프만에게
다윈의 <종의 기원> 초판을 보내며 시작됩니다.
어마어마한 금액을 호가하는 초판 <종의 기원>. 누가 책을 보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에겐 새로운 사건이 펼쳐집니다. 최첨단 보안시설을 갖춘 그의 집에 낯선 사내가 방문하여 호프만을 습격합니다. 사고로 머리를
다치게 되는 호프만. 정신을 차린 그는 <종의 기원>의 출처에 대해 찾아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됩니다.
<종의 기원>을 주문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호프만 자신이였습니다. 사건은 점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호프만은 점점 추락해 갑니다.
쿼리는 VIXAL 생각을 했다.
그에게 VIXAL은 하늘에서 붉게 타오르는 일종의 디지털 구름이었다. 때때로 떼를 지어 지구로 몰려드는 구름…. 그 구름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어느 무더운 날, 동남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의 어느 국제공항 옆, 항공 연료의 악취와 매미의 울음소리가 진동하는 공장 지구일 수도 있고,
아니면 뉴잉글랜드나 라인 강 유역의 단비와 신록에 젖은 시원한 비즈니스 공원이어도 상관없다. 런던이나 뭄바이, 상파울루의 신축 오피스텔의 아무도
찾지 않는 어두컴컴한 층을 차지하거나, 심지어 수십만 대의 가정용 컴퓨터 안에 몰래 들어앉을 수도 있다. 그것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그는 감시 카메라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가볍게 목례를 했다
-P.325-
3.
자본주의와, 기술. 그 탐욕
속에서 호프만은 그 끝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곤두박질 칩니다. 경제학을 배우며 귓동냥으로 들은 각종 펀드들과 선물 옵션의 내용은 전공자인
학생들도 쉬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내용을 모르고 자신의 돈을 맡기죠. 존재하지 않는 돈이 돈을 불리는 상황입니다.
이런 허상의 자본주의 속에서 항상 성공할 것만 같은 주인공의 추락은 인상적입니다.
책은 해지펀드를 비롯한 기초
지식들을 알고 봐야 호프만의 추락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친절한 작가가 쉽게 설명을 해주지만, 장르소설에서 만나는 금융 용어는 낯설수 밖에 없습니다. 책을 들고 조금씩
찾아보면 더욱 즐거운 독서가 될 수 있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