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 새 아침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 사람들은 이런 급격한 변화가 그닥 반갑지 않은 듯 짬이 날 때마다 불평처럼 계절 이야기를 했다. 근처 공원에는 여름의 한 귀퉁이에서 불거져 나온 듯한 가을 한낮의 햇볕을 쬐기 위해 등이 굽은 할머니들이 모여들었고, 그런 할머니들 주변으로 먹이를 탐하는 비둘기 떼가 포릉포릉 날아들었다. 세월을 한참이나 거슬러 오른, 물기가 쏙 빠진 건조한 이야기들이 넋두리처럼 허공에 오갔고, 저마다 자신의 추억을 말하느라 누구도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다만 잎이 떨어지는 벚나무 위에 앉아 있던 박새 한 마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듯 이따금 고개를 까딱거리며 공감을 표하곤 했다. 세월의 무상함은 기온이 떨어지는 속도에 비례하여 쓸쓸하거나 허전한 느낌을 더해가는 듯했다.


짧은 연휴를 마치고 출근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더께로 쌓인 피로가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아무리 많은 조언을 들어도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만족해하며 얼굴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날은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나 역시 그들을 향해 억지웃음을 흘릴 수는 없었다. 제시카 아우의 소설 <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를 읽고 있다. 소설을 관통하는 잔잔한 분위기 탓에 독자인 나 역시 깊이 가라앉는 경험을 한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나는 엄마를 생각했고 언젠가 그러니까 아직 오지 않은 어느 날,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 집에 단 한 가지 임무를 위해, 엄마가 한평생 쌓아온 소유물을 정리해 모두 치우고 꾸리러 언니와 함께 가게 될 것을 생각했다. 그 집에서 발견할 온갖 것들을 생각했다. 패물과 사진 앨범과 편지와 같은 사적인 물건도 있겠고, 꼼꼼하고 잘 정돈된 삶의 표지도 있겠지. 계산서와 영수증, 전화번호, 주소록, 세탁기와 드라이어 사용 설명서 같은. 욕실에 있을 반쯤 쓴 향수와 크림이 든 유리병과 용기. 엄마가 매일 치르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길 그리도 꺼리던 의식의 흔적. 언니는 어김없이 질서정연한 자세로 임하며 간직할 것, 기증할 것, 쓰레기로 처리할 것, 세 가지 더미로 모든 걸 정리하자고 말할 것이다. 난 동의하겠지만 끝내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다만 그 이유가 감상이 지나쳐서일지 부족해서일지는 알 수 없었다."  (p.126~p.127)


요즘처럼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한 날씨에 산을 오르는 일은, 비가 적당히 내리는 날 등산을 하는 것에 비해 더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경사로에서의 마른 모래와 자갈에 쉽게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싹 마른 낙엽 더미도 사람들을 쉽게 넘어뜨리곤 한다. 선선하고 건조한 날씨가 등산에 최적인 듯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복병이 언제나 숨어 있게 마련이다. 사실 중대한 부상은 최적의 조건에서 사람들이 마음을 놓을 때 발생하곤 한다.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요즘, 긴장의 끈을 완전히 내려놓는 순간 오늘 아침 강원도 산지에 내려졌던 한파주의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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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10-0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능력있는 사람은 화수목 월차 사용해서 길게 휴가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요즘 같은 불황기에 구럴 베짱이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해 집니다.
요즘 일교차가 심하니 꼼쥐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꼼쥐 2026-10-10 14:53   좋아요 0 | URL
요즘 낮과 밤의 일교차가 정말 심한 듯해요. 카스피 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저는 사실 어디로 이동하거나 여행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휴가를 길게 줘도 마땅히 할 일은 없는 듯합니다. 물론 집에서 책을 읽는 건 좋겠지만 말이죠. 그래도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갸, 직업이 뭐이가?
표재순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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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하는 삶의 에피소드에는 언제나 자신이 즐겨 듣던 노래나 자주 보았던 드라마, 벽에 걸려 있던 그림 한 점, 우연히 보았던 영화나 연극 등과 결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몇몇 기억에는 그런 것들과 더불어 그 순간에 먹었던 특별했던 음식이 더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추억의 대부분은 그 시절에 유행하던 예술의 한 토막을 실마리로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컴퓨터 기억장치에 폴더의 이름을 지정하는 것과 같아서 수많은 기억 속에서 하나의 색인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올림픽 개회식의 굴렁쇠 소년'이나 당시의 올림픽 공식 주제가였던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를 떠올리면 올림픽 기념우표를 손에 넣었던 친구의 뻐기는 듯한 얼굴 표정이 나도 모르게 재생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서 예술은 추억을 떠올리는 중요한 실마리 역할을 하면서 우리 삶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던 표재순 연출가와 같은 이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많은 추억의 색인표에는 그가 만든 작품명이 줄줄이 끌려 나올 테니까 말이다.


"경기장에 모인 10만 관중이 일제히 탄성을 쏟아냈다. 전 세계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22억 명도 숨을 죽였다. 한쪽 모서리에서 나타난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며 경기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다. 그것은 하나의 점이었다. 빨간색 챙이 달린 흰 모자를 쓰고 하얀색 반소매 상의와 반바지에 흰 양말과 신발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소년이 오른손으로 굴렁쇠를 굴리며 움직였다. 능숙한 솜씨였다. 3분의 2지점쯤 갔을까? 소년이 멈춰 섰다. 굴렁쇠를 오른쪽 어깨 위로 올린 채 관중석을 향해 왼손을 흔들었다. 박수갈채가 잠실벌을 가득 채웠다. 소년은 다시 굴렁쇠를 굴리며 성화가 타오르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하나의 선이었다. 이 장면은 서울올림픽 개회식의 백미로 꼽힌다. 화려함도 웅장함도 기발함도 없어 보이는 굴렁쇠 굴리는 한 소년의 평범한 이 모습이 왜 그토록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걸까? 당시 나는 개회식 제작단장으로 총연출을 맡고 있었다. 모두가 감격스러워하는 열기의 현장 속에서 내 가슴은 새가슴처럼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p.31~p.32)


1937년 생, 구순에 가까운 원로 연출가 표재순의 자전 에세이 <갸, 직업이 뭐이가>의 서두는 이렇게 이 시대의 선명한 기억 속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으로 시작된다. 음악극, 뮤지컬, 오페라, 마당놀이 등 장르를 불문하고 자신의 열정을 불태웠던 무대 연출가였고, 서울올림픽, 한일 월드컵 등 국가적 행사를 진두지휘했던 거장이었으며, 평균 시청률 50%를 상회했던 '모래시계'를 탄생시킨 명제작자였고, 세종문화회관 초대 이사장 등을 역임한 문화행정가이기도 했던 표재순 연출가는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에게 추억의 몇몇 장면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가 메가폰을 잡았던 현장들을 생생하게 회고하고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그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기억을 관통하는 추억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독자는 글에서 느끼는 감동이 아니라 자신이 불러낸 추억의 몇몇 장면을 통해 가슴 먹먹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출범 5년 차였던 신생 방송사 SBS는 '모래시계'의 대박에 힘입어 KBS, MBC를 따라잡으며 전국 방송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신영균 회장과 나 그리고 송지나 작가와 김종학 PD는 이 드라마를 정치 드라마나 시국에 편승한 그런 드라마로 만들려 했던 게 아니었다. 젊은 남녀 세 사람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드라마였다. 한 명은 깡패고, 한 명은 검사고, 이 두 친구가 좋아했던 여인이 등장하다 보니 시대 상황이 배경으로 나온 것인데, 의도치 않게 시국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비극과 혼돈이 공존하던 질풍노도 시기, 똑같은 시대적 상황이엇으나 한 번은 조직을 떠나야 했던 쓰라린 기억으로 한 번은 조직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환희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p.266)


'제1막 무대는 항상 예측불허다', 제2막 좋은 만남이 좋은 연출을 낳는다', 제3막 드라마는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제4막 배우는 가도 무대는 남는다', 제5막 왕십리에서 DMZ까지, 모든 것이 무대였다'의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45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지만, 평생 기발한 아이디어와 참신한 구성을 기획하면서 살아온 까닭인지 책의 구성 역시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쉽게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의 힘이 작동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명절 전후에 짬이 날 때마다 간간이 읽었음에도 너무도 빨리 읽은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나는 작가의 책을 읽었던 게 아니라 작가와 함께 내 추억의 몇몇을 들춰보았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내 인생에는 낭비가 참 많았던 것 같다. 'Wasted Life', 낭비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이면 연극, 뮤지컬이면 뮤지컬, 드라마면 드라마, 행사 이벤트면 행사 이벤트, 이렇게 외골수처럼 쭉 한길을 가야 하는데, 나는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다 하면서 갈지자로 걸어왔다.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다 놓친 것이 많은 바보 같은 삶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갸, 직업이 뭐이가?" 장민호 선생이 나를 두고 이렇게 물은 건 그런 까닭에서였을 것이다."  (p.449 '에필로그' 중에서)


누구에게나 100% 만족한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지나고 보면 아쉬움과 후회가 남게 마련이다. 그러나 후회만 말하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고, 성공만 말하기에는 인생은 한없이 덧없다. 그러므로 나는 구순의 연출가가 들려주는 그의 성공과 실패에 집중하기보다 그가 참여했던 여러 드라마나 행사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어리거나 젊었던 당시의 내가 겪었던 추억들을 회상했다. 말하자면 나는 책을 읽었던 게 아니라 나에게 얽힌 추억을 읽었던 셈이다.


일본 나고야 아시안게임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되는 중계영상을 보면서 매 순간 일희일비하는 듯 보이지만, 미래의 관점에서 지금을 본다면 그 영상 하나하나가 우리 기억의 색인표가 되어 보고픈 추억을 소환할 때 실마리로 작동할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저녁, 금메달을 목에 건 대한민국 국가대표 중 한 선수의 환한 표정이 우리들 각자가 겪었던 서로 다른 추억을 먼 훗날 마치 어제 일인 양 또다시 불러낼지도 모른다. 하나의 이벤트는, 시대를 이끌었던 하나의 예술은 우리들 각자의 추억을 소환하는 하나의 색인이 되는 것이다. 표재순 연출가의 자전적 에세이가 그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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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던 명절 연휴가 끝났지만 연휴의 후유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듯합니다. 나이가 든 탓일 테지요. 전보다 운전을 많이 한 것도, 더 많은 일정을 소화한 것도 아닌데 피로를 느끼는 강도와 시간은 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걸 보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현실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이 슬프거나 절망스럽게 느껴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에 저으기 안심이 되는 기분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지독한 비관론자인 듯 오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어진 하루하루를 마냥 즐겁게 살아가는 낙천주의자에 가깝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만의 주관적인 판단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우리는 흔히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누구나의 삶에도 딱 들어맞는 정확한 경구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닥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나 역시 삶의 방향을 잘못 잡는 바람에 안 해도 될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생이 인생을 풍요롭게 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시간을 헛되이 소모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곤 합니다. 나의 경험만으로 판단한다면 삶은 확실히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대통령의 정책이나 공약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책을 아무리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고 해도 결국 정책의 수혜를 입는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마나한 정책에 불과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속도를 강조하곤 합니다. 이를 보다 못한 여러 명의 여권 관계자들이 대통령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조언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대통령은 자신의 쇠심줄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는 듯 보입니다. 그 바람에 지지율은 끝 간 데 없이 추락하고, 이를 고깝게 생각하는 정부와 여당은 조언을 하는 사람들을 되레 공격하거나 법적 조치 운운 하면서 겁박을 하고 있습니다. 마이동풍도 이 정도면 가히 역대급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속도를 강조하면서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본인은 자신의 노력을 몰라주는 국민이 야속하고 얄밉게 느껴지겠지만 말입니다. 그렇다고 국민과 싸우겠다는 태도는 보기에도 좋지 않고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중시키는 듯합니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에 나오는 일부 문장을 옮겨보겠습니다.


"남에게 잘난 척하고 고상한 척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품위 있는 지식을 지닌 뛰어난 존재라고 누군가를 붙들고 자랑을 늘어놓고 싶어 안달을 부린다.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마치 그것이 종교의식이라도 되는 냥 그럴듯한 얼굴을 들고 우쭐대며 돌아다닌다. 그들은 자신 외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해 박수를 쳐주는 관객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제 무덤을 파는 것이다."  (p.207)


대통령은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글에서 "일상 속에서 댓글로, 메시지로, 전화로, SNS 글로 언론이 외면하고 유튜버가 조작하는 숨겨진 진실과 팩트를 알리고, 남의 글이나 기사 댓글에 좋아요 한 번 누르는 것도 그 순간 우리가 원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실천"이라고 썼다고 합니다. 다들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조언하는데 정작 본인만 아니다, 그러니 나의 우군이 되어 달라고 고집하는 모습은 참으로 딱해 보이기만 합니다.


바깥 활동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조금 걸었을 뿐인데 나른한 졸음이 몰려옵니다. 추석 연휴의 피곤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조금씩 쌓여가는 기분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주말에도 3일 동안의 짧은 휴가가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늘은 높고 지지율은 수척해지는 계절, 아슴아슴 졸음이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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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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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는 없고 형식만 존재하는 삶이 기약도 없이 이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삶은 뱀의 허물이나 매미의 껍질처럼 가볍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영혼도 없이 출근을 하고, 뭘 했는지 기억도 하지 못하면서 누군가가 요구하는 일을 어떤 감정도 담지 않은 채 꾸역꾸역 하다 보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는 심정으로 퇴근을 한다. 그런 날들이 쭉 이어진다.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질 필요조차 없다. 어차피 시간은 물 흐르듯 흐르고 나의 가벼운 삶은 종이배처럼 떠다닐 테니까. 그리고 시간의 여울만 만나지 않는다면 내 삶의 종이배도 이따금 기우뚱거릴 수는 있어도 시간 속으로 영원히 가라앉지는 않을 테니까.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에 물든 집안에서 태어난 우리 엄마 김경형의 '미친년 인생'은 엄마 탓이 아니다. 엄마 탓은 아니지만 엄마가 미친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잔혹한 굴레 속에서 나 또한 미친년으로 자라났다. 그나마 나는 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는 미친년이라 다행이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엄마의 미친년 역사도 무척 소중하기에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  (p.51)


가수이자 작가, 영상 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이랑의 에세이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를 읽는 독자라면 이 책의 저자가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 이랑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에 다소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방송에 노출되던 그녀가 가수로서 우쭐대거나 거들먹거린 적은 없지만 사람들에게 꽤나 특별하게 들렸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를 작사, 작곡한 것은 물론 직접 노래까지 불렀던 천재 아티스트의 이면에 그처럼 아픈 성장 스토리가 있었다는 건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폭력적인 아빠와 우울증을 앓던 엄마. 엄마의 곪은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자라다가 결국 자퇴를 하고 집을 뛰쳐나가야만 했던 이랑의 성장기는 아프다 못해 가슴 답답하다.


"언니는 가족이 싫다고 10대 때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내가, 부럽고 미웠을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없던 언니에게 나는 수차례 '그만두라'고 말을 했다. 언니는 그때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p.110)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3남매. 특수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언니와 가수이자 작가인 이랑 본인과 장애를 안고 태어난 남동생 이완. 작가는 자신을 포함한 3남매를 혈연이 아닌 '피해생존자 동지'로서 사랑한다고 말한다. 명문대와 명문여대 국어국문학과를 다녔던 아빠와 엄마 덕분(?)에 집안에는 작은 도서관처럼 많은 책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고,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아빠와 심한 우울증으로 집안일에서 손을 놓다시피 했던 엄마로 인해 집은 언제나 좁고 지저분했다. 그러나 깔끔한 성격의 작가가 달아날 곳은 없었다. 엄마 옆에 앉아 책을 읽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자신의 약함을 아는 인간을 좋아한다. 약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하는 인간이 좋다. 살아나가는 두려움을 아는 인간이 좋다. 살아갈 방법을 무언가에 의탁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인간이 좋다. 자신의 방법을 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 좋다. 더 탁월한 방법으로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 좋다. 말과 글이 좋다. 말과 글을 좋아하는 인간이 좋다. 겪지 않은 이야기로 끝없이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이 좋다. 나는 인간으로, 현재 존재하는 인간들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이다음을 살아갈 인간들을 상상하면서."  (p.205~p.206)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길지 않은 연휴 탓인지 사람들은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차분한 휴일을 보내겠다고 다짐하는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 친인척들.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사랑만 주기에도 이번 연휴는 그 기간이 너무나 짧은 듯하다. 추석 명절을 보내고 다시 일터로 복귀한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와 사랑의 열기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이랑의 노래 '잘 듣고 있어요'를 들으며 오늘 내가 읽었던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를 떠올린다.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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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신의 삶을 매 순간 또렷이 감각하고 인지하면서 살아야 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세월의 흐름에 수동적으로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때로는 지겹고 힘든 날들을 보내기도 합니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그날이 그날 같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날들로 채워지고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자신의 죽음을 유예할 수 없는 까닭에 자신이 감각하는 삶을 유예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는 죽음의 순간을 자신의 뜻에 따라 앞당길 수는 있어도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그 순간을 뒤로 한정 없이 미루기는커녕 단 일 초도 유예할 수 없기에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우리는 그 삶에서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을 유예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마저 유예할 수 있다면 순간순간 느끼고 감각하는 것들도 때로는 무미건조하게 지나치거나 쉽게 잊은 채 지나친다 한들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조금도 유예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고 너무도 당연한 진리이지만 말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하락에서 비롯된 기자회견이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나만의 주관적인 판단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민주당의 신임 당대표를 비롯한 당내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이해타산과 이를 이용하여 경제적 이득과 명성을 취하고자 했던 일부 유튜버와 정치 지망생들의 결합에서 시작된 멸칭과 조롱의 정치 비평은 의식 있는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아 왔고, 그 기간 또한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같은 진영 내의 갈등과 마찰을 적극적으로 봉합하여야 했던 청와대는 오히려 이를 방치하고, 용인하고, 때로는 부추기는 듯 보였습니다. 멸칭과 조롱을 일삼는 인사를 오히려 중용하고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반명'이니 '신천지'니 하면서 차별하였던 것입니다.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기는 기회'라고 역설해 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위기에도 정도가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단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시야는 극도로 좁아지고 관심사는 오직 자신에게로 쏠립니다. 인간의 생존본능상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이하게도 극단적인 자만과 극단적인 위기 상황은 쌍둥이처럼 닮아 있습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70%에 육박하였을 때 대통령을 비롯한 이른바 친명 세력은 극단적인 자만에 취해 있었고, 자신들이 미워하는 일부 지지자들이 빠져나간다고 하더라도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했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지지율이 끝없이 추락하여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 처하자 이제는 오직 자신들의 생존만 중요할 뿐 주변의 다른 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더욱더 분노를 쏟아내야 할 테고, 자신들의 행동이 초래할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살필 여유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고치로 높았을 때도, 지지율이 끝 간 데 없이 추락할 때에도 멸칭과 조롱을 일삼으며 하던 짓을 계속하게 될 뿐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사태의 초기에 막았어야 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높은 지지율에 취해 기고만장하던 시기인지라 '설마' 하던 기류가 팽배했었습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지속하면서 시시각각 삶을 감각하고 인식한다는 건 자신의 삶을 유예하지 않고 현재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즐거워하면서 순간순간의 자기감정을 감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동체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자신의 삶이 전체 인생에서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른바 친명을 자처하는 일부 유튜버와 정치가들은 그런 것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의 생존을 위해 파닥거리며 누군가를 향해 분노하는 듯 보입니다. 그들도 부디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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